[충남시론] ‘조선시대 신문고’ 갈수록 걱정이다
[충남시론] ‘조선시대 신문고’ 갈수록 걱정이다
  • 임명섭 주필
  • 승인 2019.06.19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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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고는 조선시대 백성이 왕에게 북을 쳐 억울함을 호소하는 소통 창구였다.

태종 11년 조정이 군량미 확보를 위해 식량 배급을 줄이자 군졸 300명이 “배가 고프다”며 신문고를 쳤고 태종은 이들에게 토지를 내려 도왔다는 일화가 전해 온다.

신문고는 본래 중국 송나라의 고사에서 착안해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신문고가 만능해결사는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문고를 올려 상소하더라도 그의 상관이나 주인을 고발한다거나, 품관·향리·백성 등이 관찰사나 수령을 고발하는 경우 등도 있었다.

이 신문고는 오늘날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취지로 시작된 ‘국민청원’과 비슷하다. 그래서 국민청원은 ‘현대판 신문고’라 불리기도 했다. 때문에 국민청원도 나름대로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정당해산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120만 명 넘게 동참하기도 했다. 역대 최다 기록이다. 정당해산 결정은 국민들이 내놓은 청원과 의견에 의해 단순히 결정되지는 않는다.

문제야 어찌됐건 중요한 건 국민들의 목소리가 크다는 것이다. 국민청원은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 한다’는 점이 옛 신문고나 다름없는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수단과 같다.
국민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은 청원에 대해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로 부터 답변을 하도록 됐다. ‘국민청원’이 많다는 사실은 그동안 국민의 속앓이가 어쨌는지를 짐작하게 해 인기몰이가 됐다.

하지만 국민청원만 올리면 신통한 효능의 신약처럼 여긴 국민의 기대가 지나쳐 정확한 효능과 부작용에는 무심했다.
‘국민청원’은 신약이 아니다. 신문고가 아니라도 우리 헌법 26조에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가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1항),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2항)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에 따라 청원법에는 모든 국가기관에 청원할 수 있도록 되었다. 일선 행정기관에 ‘민원’이 들어오고, 국회에도 입법청원이 잇따른다. 복제약이지만, 고유 효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 남녀노소는 스마트폰으로 온갖 소식을 알리고, 논평하고, 제안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가운데 20만명만 “좋아요” “공감해요”를 날리면 국가최고기관에서 곧바로 답변을 하니 이런 즉효약이 또 있을까?

최근에는 “하나 마나 한 소리”, “이럴 거면 무엇 하나” 등의 불만도 있다. 응답을 기다릴 이유가 없다는 소리도 들린다. 즉효약은 즉효약일 뿐, 특효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잠시 열기를 달래고, 답답증을 풀어 줄지언정, 병인을 제거하진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오는 내용 중 단순한 민원 문제가 아니여 심각한 헌법 위반이라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자칫 잘못하면 예전 그리스 시대 때 도편추방법처럼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국민청원 게시판이 이용될 수 있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어 걱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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