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이전 임진강 포구는 어땠을까?’… 연천고랑포구역사공원
‘분단 이전 임진강 포구는 어땠을까?’… 연천고랑포구역사공원
[여름시즌] 문화체육관광부·한국관광공사 선정 '내가 추천한 숨은 관광지'
  • 강주희 기자
  • 승인 2019.07.03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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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문화의 찰나 전시관-서영진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역사와 문화의 찰나 전시관-서영진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연천고랑포구역사공원' - 경기 연천군 장남면 장남로

‘분단 이전에 임진강 포구는 어땠을까?’ 임진강에 대한 단상은 애잔하면서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강으로 나서는 길은 철조망이 가로막고, 옛 포구로 다가서는 것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1930년대 임진강 포구에 백화점 분점이 들어서고, 우시장으로 들썩였다는 얘기가 생소하게 들릴 뿐이다. 고랑포는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로, 임진강을 통한 물자 교류의 중심 역할을 했다. 한국전쟁과 분단을 거치며 쇠락해 지금은 나루터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지만, 옛터에 온기를 불어넣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임진강 포구의 번성한 과거를 엿볼 수 있는 연천고랑포구역사공원이 지난 5월 10일 문을 열었다. 연천군 장남면에 자리한 공원은 1930년대 고랑포 일대의 역사를 고스란히 재현한 공간이다. 옛 사진에 담긴 고랑포구는 지금과 달리 임진강 변에 집이 가득 늘어선 풍경이다. 개성과 서울을 잇는 교통요지였던 포구 주변은 늘 북적거렸다. 서해안을 따라 임진강을 거슬러 생선과 새우젓 배, 소금 배가 올라오기도 했다. 공원의 전시 공간에서 번창한 고랑포의 옛 모습을 가상현실(VR)과 증강 현실(AR) 체험으로 보여준다. 빈터만 있던 포구 마을 일대는 공원이 들어서며 옛 임진강 변의 삶을 살갑게 투영한다.

연천고랑포구역사공원으로 향하는 길은 고즈넉하다. 인적이 뜸한 길목을 굽이굽이 지나치면 연천 경순왕릉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공원이 있다. 공원이 위치한 장남면 일대는 예전에 황해도 땅이었다. 분단 이후 파주에 편입됐다가 다시 연천군에 속하는 질곡의 과정을 거쳤다. 공원 뒤편 야산을 넘으면 남방한계선과 이어지는 삼엄한 지역이다. 철조망에 ‘지뢰’ ‘출입 금지’ 표지판이 빼곡하다.

2층으로 낮게 드리워진 공원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시간 여행이 시작된다. 총 112억 원이 투입된 공원은 ‘삶의 찰나’ ‘역사와 문화의 찰나’ ‘오감의 찰나’ 등으로 나뉜다. 맨 처음 눈길을 끄는 곳은 1930년대 고랑포구를 재현한 ‘삶의 찰나’다. 고랑포구와 저잣거리, 화신백화점 분점, 시계포, 의상실, 우체국, 우시장, 여관 등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골목에 늘어섰다.

재현된 고랑포구 나루터-서영진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재현된 고랑포구 나루터-서영진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경기 북부 포구의 중심이자, 임진강 수운의 종점이던 고랑포는 개항기를 거치며 상업이 더욱 번창했다. 고종 때부터 시작된 곡물 수출이 1890년에 급격히 증가하며 포구가 활기를 띠었고, 고랑포구는 산지와 개항장을 연결하는 중간 집결지 역할을 하며 발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고랑포 일대가 얼마나 번성했는지 유추할 수 있다. 공원에 비치된 1930년대 신문 자료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장단역-고랑포-구화장에 선로를 두고 버스를 운행하던 바, 승객이 급증하여 자동차 4대로 운송이 불가능하므로 버스 1대를 구입해 추가로 운행한다.’ 최근에 고랑포구를 오가는 미니버스가 평일 2회, 주말 3회 운행하는 것을 감안하면 당시 상황과 비교가 된다.

삶의 찰나 과일 야채 가게-서영진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삶의 찰나 과일 야채 가게-서영진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삶의 찰나’ 공간은 AR 체험과 함께 접하면 더욱 흥미롭다. 매표소 입구에 적힌 대로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으면 재미있는 장면이 영상에 함께 담긴다. 의상실 앞에서 춤을 추는 무희, 우시장에서 뿔을 들이대는 황소, 생선 가게에서 이빨을 드러낸 백상어 등이 나타나 웃음과 환호를 자아낸다. 과일 가게, 주막 등도 생생하게 재현했다.

‘역사와 문화의 찰나’는 고랑포 일대의 파란만장한 과거를 살펴보는 공간이다. 고랑포구의 역사와 안보, 지리적 특성을 영상으로 구현했으며 VR 체험과 게임으로 생동감을 더했다. 전시관 자료에 따르면 고랑포 일대는 광개토대왕 때 고구려 영역에 속해 공목달현으로 불렸다. 삼국의 치열한 영토 분쟁 속에 고구려가 신라 등과 대항하기 위해 만든 연천 호로고루(사적 467호)도 인근에 있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은 승하한 뒤 이곳 고랑포에 묻혔다.

송도팔경에 드는 고랑포는 한양 천도 이전까지 개성 동쪽의 대표적인 놀이 공간으로 시객의 사랑을 받았다. '조선왕조실록', '정조편'에 '대동법 실시 후 고랑포는 강원도 이천, 안협 등에서 거둔 대동세를 한강의 용산진, 서강으로 운송하는 출발지'라고 나온다. 18세기에 고랑포가 경기 북부 지역 포구 시장권의 중심으로 성장한 기록은 '택리지'에 있다. 고랑포는 한국전쟁 당시 국군 1사단과 북한군이 격전을 벌인 현장이기도 하다. 1968년에는 김신조와 무장 공비가 얼어붙은 고랑포를 넘어 남하한 기록이 전시관에 있다.

호로고루 전투와 고랑포 전투는 영상과 게임으로 재구성돼 시대의 경계를 허문다. 특히 ‘호로고루성을 지키자’는 활쏘기, 칼싸움 등을 VR 체험으로 즐길 수 있어 인기다. 역사 체험은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하듯 황포 돛배, 패러글라이딩 VR 체험 등으로 이어진다. 황포 돛배는 서민이 한강 마포나루에서 고랑포나루까지 소금과 새우젓을 실어 나르는 주요 운송 수단이었다. 끈을 잡아당기며 직접 조종하는 패러글라이딩 VR 체험은 연천의 명소를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짜릿한 시간이다.

재현된 화신백화점 분점-서영진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재현된 화신백화점 분점-서영진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오감의 찰나’는 호로고루와 주상절리, 임진강 물길을 형상화한 놀이터다. 1층과 2층으로 나뉘며 샌드 아트 체험, 미니 암벽 체험 등과 함께 산, 강, 바다의 변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2층에는 간이 도서관과 놀이터도 마련됐다. 공원을 나서면 입구에 있는 말 동상이 이채롭다. 한국전쟁 때 연천 전투에서 활약한 미 해병대 소속 군마 ‘레클리스’다. 미 해병대는 산악 지형이 많은 한국에서 탄약 공급에 어려움을 겪자, 경주마 ‘아침해’를 구입해 군마로 썼다. 전쟁터에서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reckless) 임무를 수행한 군마는 미국 역사상 처음 하사관으로 진급해 훈장을 받았다.

연천고랑포구역사공원 관람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월요일·1월 1일·명절 당일 휴관)다. 입장료는 어린이 3000원, 청소년 4000원, 어른 5000원(단체 1000원씩, 연천 군민과 관내 주둔 장병 20% 할인)이고, 36개월 미만 영·유아와 65세 이상 노인은 무료다. 공원 주변에 식당이 거의 없으며, 가져온 음식물은 공원 내 지정된 장소에서 먹을 수 있다.

연천 경순왕릉(사적 244호)이 공원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신라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경주 지역을 벗어나 경기도에 있는 왕릉이다. 경순왕이 개성에서 승하한 뒤 경주로 옮기려 했으나, 고려 조정에서 왕의 시신이 도성 100리 밖으로 벗어날 수 없다며 임진강 고랑포에서 운구를 막아 이곳에 모셨다는 사연이 전해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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