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쨍하고 해뜬날, 꼬르도바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쨍하고 해뜬날, 꼬르도바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7.17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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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카 동상
세네카 동상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타임머신이 있다고 해 볼까요.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은가요. 스페인에 사는 저라면 8세기에서 10세기로 가보고 싶어집니다. 스페인 역사에서는 너무도 유명한 꼬르도바 왕국의 전성기가 바로 그 때였거든요. 우리로 치면 통일신라에서 고려 초기 정도가 됩니다. 

일단 꼬르도바에서 탄생한 유명인사부터 만나보실까요. 로마시대 당시 네로 황제의 스승이었던 세네카 Lucius Annaeus Seneca의 고향이 바로 꼬르도바입니다. 지금도 꼬르도바의 유대인 지구 알모도바르의 문 앞에서 세네카는 오가는 사람들에게 그의 명언을 전해주고 있어요.

마이모니데스 동상
마이모니데스 동상

유대인 지구의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12세기 당대 최고의 석학인 마이모니데스의 동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철학자이자 신학자요, 천문학자에 심지어 의사이기까지 했던 그의 이름은 천재의 또다른 이름일까요. 우리에겐 무척 생소한 분이지만, 유럽인에겐 얼마나 잘 알려진 인물인지, 자기 자식들도 마이모니데스처럼 머리 똑똑하고 잘나기를 바랐는가 봐요. 그렇게나 괄시받았던 유대인 출신이었음에도 지금 그의 동상 아래 신발은 반질반질 그렇게 윤이 날 수가 없어요. 자식 잘 되길 바라는 부모의 지극정성 마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가 봅니다.

로마와 유대인까지 소개한 마당에 이 분을 놓치면 아랍에서 너무나 섭섭해 하겠네요. 공부 열심히 해 벌은 돈, 다 내거여 하던 마이모니데스와 쌍벽을 이룬 분, 아베로에스, 본명 이븐 루쉬드를 소개합니다. 이 분 역시 철학, 천문학, 의학을 다 섭렵하셨지요. 여기에 법학까지 손에 쥔 분입니다. 아랍계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주석에 있어 가장 권위있는 분이었어요. 머리가 깨인 분일수록 자기 것만 고집하는게 아니라 폭넓게 다양한 사상을 받아들이되 자신의 것으로 풀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통하는 일이군요.

아베로에스 조각상
아베로에스 조각상

꼬르도바는 분명 이슬람의 통치 하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8세기 아브드 알 라흐만 1세 이래 종교와 민족의 구별없이 예술과 문화의 진흥을 적극 장려한 덕에 이슬람, 유대교, 기독교가 분쟁과 전쟁을 일삼기 보다는 평화와 공존에 필요한 관용과 존경의 정신을 갖게 되었지요. 그래서 세상 유래없는 융합과 공존의 문화양식을 갖게 되고, 특히 당시 유럽인에게 인간 이하로 핍박받던 유대인으로선 꼬르도바는 낙원과 다름 없었지요. 꼬르도바의 소문을 듣고 돈자루를 쥔 유대인이 찾아와 적극 왕국을 돕고 나서니, 물질이 쌓여가는 꼬르도바로선 필연적으로 번영을 누릴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 영광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10세기 당시 인구 50만 (타 유럽 도시는 3만여명 정도), 서민 가호 10만, 모스크 700, 병원 50, 상점 8만, 무엇보다도 대학교육기관이 17에 도서관이 70 이나 되었으니, 당시 중세유럽에서 “내가 제일 잘 나가!” 라며 거침없이 큰 목소리 낼 수 밖에요.

외부의 약탈과 침입에 대비해 수비형 구조를 가지던 중동 아랍의 마을 모양 그대로 꼬르도바 구시가도 시원스레 뻗기 보다는 좁고 구불거리는 통에 길 한 번 잘못 들었다가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나온 도둑처럼 미로에 갇혀 버리기 십상입니다. ‘길을 왜 이런 식으로 해 놓았담?’ 하고 툴툴 거리려던 찰나, 40도를 웃도는 뜨거운 여름 한낮에 거리를 누비다 보니 좁은 길마다 드리워진 옆 건물의 그림자 덕에 그나마 쉽게 다닐 수 있음을 깨닫고 그들의 지혜에 감탄하게 됩니다. 게다가 만약 전쟁이라도 난다면 이렇게 구부러진 골목길 덕에 그 옛날 창과 화살을 피하기가 조금이라도 수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다 저마다 처한 환경에서 삶의 지혜가 나오기 마련인가 봅니다.

꽃길

꽃길이라는 짧지만 예쁘게 하얀 벽에 걸린 화분으로 장식된 길에서 사진을 몇 장 담고 나니 드디어 성당이자 사원인 사원성당 Mezquita Catedral 이 눈 앞에 드러납니다. 쨍하고 해뜬 날, 사원성당의 멋진 중정인 파티오에 들어서며 이곳 출신인 세네카의 명언을 나지막이 음미해 봅니다.

‘산다는 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계속해서 배우는 일이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요. 또 배운 것을 어떻게 본인의 삶에 적용하고 실천해 보고 있는지요. 함께 라면 더욱 좋고, 혼자라면 일기장에 적어 생각을 정리하고 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김덕현 Steve
김덕현 St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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