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지역 문화재] 사적 제301호 부여 정림사지
[우리지역 문화재] 사적 제301호 부여 정림사지
  • 이훈학 기자
  • 승인 2019.07.22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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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일보 이훈학 기자] 부여 정림사지는 부여읍 동남리에 위치하며 백제 사적을 대표할 수 있는 유적으로 사적 제301호로 지정돼 있다. 

이 사지의 사명이 정림사라 불리고 있는데 백제시대에도 정림사란 명칭이 사용됐는가에 대해서는 관련된 유래나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림사지라 부르는 것은 1942년에 일본인 등택일부(藤澤一夫)에 의해 사지에 대한 조사가 처음 실시되면서 출토된 명문와에 ‘태평팔년무진정림사대장당초(太平八年戊辰定林寺大藏當草)’란 명문에 의해 정림사란 사명이 등장했던 것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이 명문와의 연대는 고려 현종 19년을 가리키고 있어 그 이전의 사명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다. 

이후 1979∼1980년, 1983∼1984년에 걸쳐 충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전면적인 재조사가 실시됐다. 조사 결과 가람은 일탑일금당식으로 남북을 축으로 해 남에서부터 중문, 탑, 금당, 강당이 배치되고 아울러 회랑이 강당에서 중문을 연결해 돌려지고 있다. 

더불어 중문 밖에는 연지도 조성했다. 중문지는 석탑을 중심으로 남으로 19.98m 거리를 두고 남쪽에 문의 중심을 두고 있으며 주초 적심석 8개군이 전후 4열씩 배치돼 있어 정면 3칸, 측면 1칸에 11.30×5.30m의 규모로 이뤄졌던 것을 확인해 줬다. 

금당지는 석탑에서 북으로 26.7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면서 2중기단을 지닌 건물로 조성됐다. 이 금당지의 2중기단 상하층에 모두 초석이 배치돼 있는데 하층을 중심으로 할 경우 정면 7칸에 측면 5칸으로 18.75×13.80m의 규모이고 상층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금당이 화재에 의해 소실됐음도 확인됐다. 

강당지는 금당지에서 북으로 31.70m 거리를 두고 있으며 정면 7칸, 측면 3칸에 24.64×10.70m의 건물이다. 이 강당지에서는 5개의 초석이 발견됐고 아울러 백제 이후 고려시대에 중건된 것도 밝혀졌다.

회랑지는 동서로 구분할 수 있는데 동회랑의 경우 발견된 초석의 간격은 3.85×4.20m이다. 이외에 사찰의 동북부에서 문지, 건물지, 배수구 와적층 등이 발견됐다. 

한편, 중문 밖에는 연지와 남문지가 있는데 중문에서 남으로 43m 떨어진 지점에 남문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문에서 남으로 4m 거리를 두고 연지가 위치한다. 

연지는 가운데 2m의 동로를 둔 동서의 연못으로 나뉘는데 한변이 11∼12m되는 방형이다. 사지에 대한 정밀한 발굴 조사가 이뤄진 결과 이 사적에 대한 정확한 면모가 파악돼 백제 사찰 형식의 기본 모형을 제공하고 있으며 더우기 사지 내에는 백제의 오층 석탑이 유존돼 있어 그 성가를 높이고 있다.

자료제공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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