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시간 여행, 꼬르도바의 메스키타 I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시간 여행, 꼬르도바의 메스키타 I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7.24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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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르도바 종탑에서 본 메스키타.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세비야 대성당에서처럼 어느새 익숙해진 이슬람 사원의 중정 안에 들어섰다. 꼬르도바 역사의 핵심인 메스키타 Mezquita 이다. 세비야와는 달리 꼬르도바의 메스키타 정원은 무료로 드나들 수 있어서 한낮인데도 관광객은 오렌지 정원과 야자수에서 뜨거운 햇살을 등지고 열심히 사진을 담고 있다.

중정의 사각형 벽은 오래된 나무조각들이 늘어서 있다. 언뜻 봐선 그저 세월만 묵은 것 같은데, 나름 중요한 물건인지 일일이 번호표까지 붙여 있다. 알고보니 사원 내 천정을 보수하기 전 지키고 있던 서까래였다. 옛 것에 대한 뿌리깊은 집착은 유럽에선 영국인만 해당되는게 아니었다. 다들 그 용도에 대해 듣자 대단하다는 말을 한다.

과거 이슬람의 통치 당시에는 사원이었지만 16세기 이후 이곳은 대성당으로 변모했다. 그래서 이곳의 정식 이름은 사원-성당 Mezquita-Catedral 이다. 우리로 치자면 고려시대 불교 사찰이던 곳이 조선으로 넘어 오면서 사대부들에 의해 유교 서원으로 용도변경된 정도에 해당한달까. 묘한 일이다.

꼬르도바 메스키타 오렌지 정원.
꼬르도바 메스키타 오렌지 정원.

이슬람 사원을 뜻하는 스페인어 메스키타는 아랍어 ‘마스지드’에서 나왔다. 원어의 뜻이 이마를 땅에 대고 절하는 곳이니, 이슬람은 모임 장소부터가 의미심장하다. (참고로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는 ‘부름받은 자들의 모임’ 이란 뜻이다.) 이곳은 사원이 성당으로 된 건데, 세상엔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바로 터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동로마 제국 당시 성당으로 지어졌다가, 오스만 제국으로 주인이 바뀌자 성당 주위에 4개의 기도탑을 세우고 내부는 회칠을 해서 사원으로 쓰던 도중, 보수 공사 중에 회칠이 벗겨져 안에 있던 기독교 성화가 발견되자 다시 사원으로 쓰기 민망하여 박물관으로 변경한 곳. 세상 모든 일이 삭막한 논리로만 설명되지 않기에 그런 일도 생기는가 보다.

이슬람에 빼앗긴 땅을 되찾자고 카톨릭에서 벌인 레콩키스타 운동으로 남진하는 동안 어지간한 이슬람 사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이교도의 싹이라며 돌 하나 남겨두지 않았던 서슬퍼런 시대에서조차 꼬르도바의 메스키타는 비켜간 걸 보면 천년 전 그 위용과 화려함이 얼마나 대단했을지 가늠하기 조차 힘들다.

15세기 세비야의 대성당을 지었을 당시 미친거 아니냐 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거대하게 지어보자 했던가. 이런 이베리아 반도 스케일의 원조인 분이 있다. 8세기 꼬르도바 왕국을 일으킨 아브드 알 라흐만 1세는 지역 사령관급인 에미르의 호칭에서 벗어나 정통 이슬람 지도자의 후계자인 칼리프로 스스로 승격시켜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다. 그리고 당대 세계 최대의 이슬람 사원을 지어보고자 했다. 왕국의 인구는 날로 급증했고, 사원의 크기도 이를 감당하기 위해 증축에 증축을 거듭했다. 10세기 다른 유럽의 도시는 만 단위의 인구 밖에 안 되었던 때에 꼬르도바는 무려 50만의 인구에 메스키타에서만 동시에 2만 5천여명이 예배 드리게 할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반도의 흔한 스케일이라 봐야되지 않을까.

꼬르도바 종탑.
꼬르도바 종탑.

오렌지 정원을 둘러보니 과하지 않게 아름다운 종탑이 보인다. 종이 있다는 것은 기독교의 영향이다. 이슬람에서는 육성으로 알리기 때문에 종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니 사원에 있는 종탑은 꼬르도바가 1236년 페르난도 3세에게 탈환되고 난 후, 16세기에 성당으로 변경되면서 이슬람식 기도탑도 카톨릭식 종탑으로 변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탑에 오르려면 따로 추가 요금을 내고 표를 끊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시간을 따로 알아봐야 한다. 세비야 히랄다의 절반 정도 밖에 안 되는 54미터의 높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쉽게 올라갔다. 아담하고 소박한 전망대. 시간을 정해두지 않았더라면 혼잡 그 자체였을 것이다.

햇살이 한창 드리워진 오렌지 정원의 벽을 따라 늘어선 회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분수대에 손을 담궈 보았다. 판타지 사극 연출이라면 이럴 때 분수대의 물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더니 오색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시간여행을 하게 되겠지. 그런 기분으로 메스키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김덕현
김덕현 St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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