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혁신을 감행하고 수용할 준비가 되었는가?
[양형주 칼럼] 혁신을 감행하고 수용할 준비가 되었는가?
  • 양형주 대전도안교회담임목사
  • 승인 2019.07.28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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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혁명시대가 다가온다고들 한다. ‘혁명’이란 말 그대로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4차 혁명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과 작곡가 앤서니 브란트는 <창조하는 뇌>에서, 혁신기술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이전에 있던 혁신 생태계를 기반으로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2001년 애플의 아이팟은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아이팟이 나오기 22년 전, 영국의 발명가 케인 크레이머가 아이디어를 내고 설계도까지 만든 휴대용 디지털 음악 재생기 IXI를 발전시킨 것이다.

자동차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 포드의 혁신적인 조립 라인 역시 19세기 초 미국의 기계 발명가 엘리 휘트니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몇 백년에 한 번 나올 만한 독창적 그림으로 극찬받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도 입체파 화풍을 선도적으로 받아들인 폴 세잔의 화풍을 발전시킨 것이었다.

이처럼 혁신은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혁신적으로 발전시킨 것을 리모델링 한 결과인 것이다.
이글먼과 브란트는 인류 역사에 일어난 혁신은 기존의 것을 바탕으로 비틀기(bending), 쪼개기(breaking), 섞기(blending) 등을 바탕으로 생겨나는 공통적인 패턴을 갖는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혁신은 기존의 것을 자유롭게 비틀고, 쪼개고, 섞을 수 있어야 일어난다. 4차 혁명시대는 다름아닌 이러한 것들이 합종연횡할 때 폭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이다.
이미 앞선 선도적인 국가들은 이러한 활동들을 바탕으로 4차 혁명시대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4차 혁명시대를 외치기는 할 뿐, 이를 감행할 시도도 수용할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것 같다.
만약 기존의 것을 비틀고 쪼개고 섞으려면 기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자율성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기존의 경계를 넘나들려고 할 때마다 온갖 규제의 이름으로 발목을 잡는다. 발목을 잡고서 마음껏 뛰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우리의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창의적인 인생을 꿈꾸지만, 우리는 다른 이들이 성공이라고 부르는 삶을 비틀거나 쪼개거나 섞으려는 용기있는 시도를 감행하는데 머뭇거린다. 그러니 가슴의 울림을 따라 살기가 쉽지 않다.

새로운 혁명시대를 주도하고 싶다면, 발목을 놓고 마음껏 비틀고 쪼개고 섞도록 허용해야 한다.
혁신의 시대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우리는 속히 혁신을 감행할 자율을 허용하고, 이를 수용하며 격려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인생, 우리 사회는 진정 혁신을 일으키고 수용할 준비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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