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열흘간 열리는 비밀의 원시림, 제주 거문오름 ‘용암길’
1년에 열흘간 열리는 비밀의 원시림, 제주 거문오름 ‘용암길’
[여름시즌] 한국관광공사 선정 '내가 추천한 숨은 관광지'
  • 강주희 기자
  • 승인 2019.07.29 1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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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본 거문오름 전경(사진=제주세계유산센터 제공)
하늘에서 본 거문오름 전경(사진=제주세계유산센터 제공)

▲제주 거문오름 ‘용암길’-제주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오름은 화산섬 제주의 대표 아이콘이다. 360여 개에 이르는 오름 중 특별한 오름이 있다.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자리한 거문오름이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을 뿐만 아니라, 2010년 정부가 한국형 생태 관광 10대 모델 사업 대상지로 선정한 제주의 대표 생태 관광지다. 다른 오름과 달리 예약해야 탐방이 가능하다.

제주선흘리거문오름(천연기념물 444호)은 다른 오름처럼 민둥산이 아니라 숲이 울창하다. 삼나무와 편백나무, 소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빼곡하다. 오름이 숲으로 덮여 검게 보여서 ‘검은 오름’이라 불리다가 거문오름이 됐고, ‘신령스러운 공간’이라는 뜻도 있다.

거문오름은 공부하고 보면 가치를 더 잘 알 수 있다. 거문오름이 왜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이들이 있는데, 보이지 않는 용암굴에 그 비밀이 있다. 거문오름은 해발 456m로, 오름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북동쪽 해안선까지 이어지면서 20여 개 동굴을 형성했다. 한 화산에서 이처럼 긴 동굴이 만들어진 예가 세계적으로 드물고, 일부 용암굴에서는 석회굴의 모습까지 보인다. 이런 이유로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등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고, 2018년에는 웃산전굴, 북오름굴, 대림굴이 추가됐다. 이 가운데 만장굴 일부 구간이 일반인에게 공개된다.

거문오름 탐방 코스는 크게 두 가지다. 말발굽 모양 거문오름 분화구와 거문오름 정상부 아홉 개 봉우리를 순환하는 ‘태극길’, 거문오름에서 용암이 흘러간 길을 따라 이어지는 ‘용암길’이다. 태극길은 평소 예약하면 돌아볼 수 있지만, 용암길은 1년에 열흘간 한시적으로 개방한다.

비밀의 원시림을 경험할 수 있는 용암길_채지형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비밀의 원시림을 경험할 수 있는 용암길_채지형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용암길은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서 출발해 거문오름 정상을 지나 상록수림, 곶자왈 지대의 산딸기 군락지, 벵뒤굴 입구, 알밤(알바메기)오름까지 이어지는 약 5km 코스로 3시간 정도 걸린다. 탐방로에 들어서면 촘촘한 삼나무 숲이 맞이한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을 지나는 기분이다. 숲이 주는 피톤치드가 피부 구석구석에 들어오고, 눈도 시원해진다. 거문오름전망대까지 나무 데크가 놓여 걷기 편하다. 전망대에 오르면 능선과 함께 주변 오름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전망대에서 데크를 따라 내려오면 본격적인 용암길 시작점이 나타난다. 입구에 호기심 많은 여행자를 환영하듯 찔레꽃이 활짝 피었다. 햇살이 내리쬐는데도 얼마 걷지 않아 축축한 습기가 느껴지고, 사방에 고사리와 이끼가 보인다. 다른 숲에서 맛보지 못한 원시의 기운이 다가온다.

용암길은 대부분 곶자왈이다. 제주 방언으로 ‘곶’은 숲, ‘자왈’은 덤불을 뜻한다. 곶자왈은 ‘나무와 덩굴식물, 암석이 뒤섞여 우거진 곳’으로, 이 안에서 제주의 독특한 생태를 볼 수 있다. 현무암이 이어진 척박한 환경에서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숲이 울창한 풍경이 신비롭다. 해발 약 350m로 비교적 평탄한 길인데, 곳곳의 온도와 습도가 다르다. 더워서 손부채를 하다가, 갑자기 으스스해져 온몸이 움츠러든다. 이끼로 뒤덮인 화산석과 양치식물이 타임머신을 타고 수만 년 전으로 여행하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용암길은 식물의 보물 창고다. 아열대와 난대, 온대에 걸쳐 다양한 식물이 공존한다. 암석 지대와 용암 함몰구 등 독특한 지형 때문이다. 거문오름 일대에 분포하는 식물은 300여 종이 알려진다. 특히 양치식물은 60여 종이 서식하는데, 다른 오름과 비교할 때 종 구성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주름고사리, 지느러미고사리처럼 제주도 일부 지역에 한정 분포하거나 드물게 분포하는 종, 좀고사리처럼 고지대에 분포하는 종 등 다양하다. 거문오름에는 새우란, 금새우란, 여름새우란, 섬새우란 등 새우란 무리도 자란다. 새우란은 온대 지방에 자라는 난초과 식물로, 화려한 꽃이 특징이다. 비가 내린 다음 날이면 여기저기에 팽이버섯과 느타리, 목이버섯이 얼굴을 내민다.

거문오름 정상 456m_채지형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거문오름 정상 456m_채지형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신비로운 숲을 한참 걷다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즈음, 반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지층 변화로 생긴 풍혈에서 나오는 바람이다. 구멍이 분화구 밖까지 이어져, 숲속으로 바람을 보내주니 천연 에어컨이다. 용암길 안으로 들어갈수록 원시림이 짙다. 양팔을 벌린 고사리 무리에 이어 나무뿌리가 눈길을 끈다. 척박한 바위에 뿌리를 내린 나무가 대견하다. 특이하게 나무뿌리가 널빤지처럼 옆으로 뻗었고, 나무줄기만큼 굵다. 흙 대신 바위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변형된 모습이다.

용암길에는 제주 사람의 역사도 있다. 이제 볼 수 없는 숯가마 터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주둔한 갱도진지다. 일제는 거문오름에 군사시설을 만들고 오름을 요새화했다. 일제강점기와 제주4·3의 아픔이 거문오름에 녹아 있다.

우거진 숲에서 나와 들판을 지나면, 용암대지에 있는 벵뒤굴을 만난다. 제주선흘리벵뒤굴(천연기념물 490호)은 제주도 용암굴 중 가장 복잡한 미로형 동굴이다. 비공개 지역이라 입구만 볼 수 있다. 용암길의 마지막 구간은 동굴 카페 ‘다희연’으로, 여기서 셔틀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돌아간다.

용암길의 감동을 더하고 싶다면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에 들르자. 이곳에서 화산활동으로 생성된 제주와 용암동굴, 거문오름의 다양한 식생 등 제주 자연의 숨결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당처물동굴과 용천동굴 전시 모형으로 동굴을 간접 체험하고, 다양한 화산석을 만져본다. 제주 설화를 바탕으로 한 4D 영상도 볼 만하다.

전망대에서 능선을 바라보는 탐방객들_채지형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전망대에서 능선을 바라보는 탐방객들_채지형 촬영(사진=한국관광공사 제공)

올해 용암길이 열리는 기간은 거문오름국제트레킹이 진행되는 7월 20일부터 28일까지이다. 거문오름국제트레킹은 2008년 첫 행사를 시작해, 올해로 12회를 맞는다. 이 기간에는 예약 없이 오전 8시~오후 1시에 탐방 수칙을 교육받은 뒤 출입증을 지참하고 돌아볼 수 있다(무료). 거문오름 정상까지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걷고, 자율적으로 거문오름을 둘러본다. 지난해부터 어린이 해설사가 활동하는데, 쉬운 해설과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인기다. 운동화나 등산화가 필수이며, 스틱은 허용되지 않으니 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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