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입구에서 들어가려하니 메스키타 사원성당의 직원이 입장권의 귀퉁이를 끊어 다시 준다. 종이 영수증 대신 사진이 들어간 표를 받으니 훨씬 운치가 느껴지고 기념 삼아 간직하기에도 좋다. 눈부시도록 강렬한 햇볕 아래 있다가 들어가서 그런지 메스키타 내부는 상대적으로 어두워 보인다. 폼 재려고 썬글라스 끼고 들어갔다가는 무려 856개나 되는 기둥에 부딪힐지도 모를 일이다.
꼬르도바 왕국을 수립하며 후 옴미아드 왕조를 세운 아브드 알라흐만 1세는 로마 신전이 있던 자리에 지금의 메스키타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다른 유럽과는 달리 스페인의 경우 성당이 있는 열에 아홉은 과거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라고 보면 된다. 종교 건축물의 위치는 보통 마을의 중심에 있는 편이니 정복 후 사원을 허물면 그 부지를 다른 용도로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을텐데,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적용이라도 하듯 꼭 본인들의 종교 건축물로 다시 올린 것을 보면 인간의 집착이라는게 얼마나 대단한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856개의 기둥이라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만 과거에는 무려 1293개나 되었다고 하니, 아득한 숫자에 입이 안 다물어진다. 아브드 알라흐만 1세 때 첫 삽을 뜨기 시작한 메스키타는 이후 아브드 알라흐만 2세와 3세, 알하캄 2세, 그리고 위대한 재상 알만수르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만수르와는 동명이인)에 이르기까지 200여년의 세월에 걸쳐 증축에 증축을 거듭했다. 그 결과 가로 180m, 세로 130m로 당시 2만 5천여명의 무슬림이 동시에 기도와 예배를 드리는 거대한 종교 건물이 된다. 10세기 중세 당시 유럽은 여전히 미개한 수준에 머무르던 때에 홀로 가장 번영을 누리던 꼬르도바 왕국의 아브드 알라흐만 3세는 세계 최대의 메스키타를 짓는 과정 중에 본인을 족장의 개념인 ‘에미르 Emir’에서 무하마드의 후계자란 뜻을 지닌 ‘칼리프 Caliph’로 스스로 천명하기까지 했다. 바그다드를 능가하는 수준이 된 것이다.
오와 열을 정밀히 맞춘 이중 아치는 각각 붉은색 벽돌과 흰색 벽돌이 교대로 배치되어 멋스러움을 더하고, 끝도 없이 일정 간격으로 반복해 늘어선 기둥들은 신비로움 마저 더한다. 무엇보다도 이곳이 카톨릭 수호의 나라인 스페인에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13세기 레콩키스타에 함락된 이후 이슬람 사원의 기능은 멈추었지만 정복자의 눈으로도 이교도의 싹이라며 돌가루로 날리기에는 너무도 아까웠을 것이다. 벽을 따라 곳곳에 위치한 35개나 되는 소예배당들 (서어 capilla, 영어 chapel) 내부에 그려진 기독교 성화가 다름 아닌 메스키타 안에 있으니 물과 기름 마냥 어색함도 살짝 감돈다.
사람들의 행렬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일반 아치에서 말발굽을 찍은듯 평범함을 탈피한 무데하르 Mudejar 양식의 아치가 나온다. 거기서 몇 발자국 더 나아가 눈을 들어보니 아치가 꽃을 피우듯 몇 겹씩 중복된 칼리프 Caliph 양식의 아치까지 보며 아랍인들의 수학, 기하학, 건축학에 대해 탄성이 나도 모르게 나직이 흘러나온다. 지금의 아랍인에 대한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다.
벽 끝으로 가니 황금으로 황홀하게 둘러싸인 이슬람 사제인 이맘 imam 의 기도장소, 미흐랍 mihrab 이 시간의 힘을 무색하리 만치 이겨내고 지금도 찬란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당초문의 아라베스크 arabesque 는 장인의 세밀한 기술력을 가늠케 하고, 빽빽하게 새겨진 치장벽토 stucco 는 열정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천정은 눈길 닿는 곳마다 황금이 둘러진대다 자연광이 쏟아져 금빛 반사로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다. 기도실을 둘러싼 코란구절은 까막눈인 내게 조차 신의 뜻에 최대한 맞춰 살아야겠다는 생각마저 갖게 한다. 문맹인 신자를 위해 성당은 반복된 그림과 조각, 형상으로 보여주는데, 그 어떤 그림이나 조각도 우상숭배라며 금했던 무슬림은 아예 글자를 새겨 놓았으니, 당시에 이슬람 입장에선 어찌보면 기독교를 본인들보다 한 수 아래로 보았다는 주장에 일견 수긍이 간다.
이제 절반을 보았을 뿐인데, 눈은 이미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이슬람 장인의 기술과 정성에 압도되어 이곳이 성당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맞다, 이곳은 꼬르도바의 대성당이 있는 곳이지.’ 뛰는 가슴을 겨우 가라 앉히고 옆 전시실로 발길을 옮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