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창민의 티벳 톺아보기] 만리장성 너머의 사람들
[주창민의 티벳 톺아보기] 만리장성 너머의 사람들
  • 주창민 대전 빛그린스튜디오 대표
  • 승인 2019.08.0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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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2006주창민 All rights reserved 실크로드 선상의 지평선
(c)2006주창민 All rights reserved  신장위구르 우룸치 천산천지
(c)2006주창민 All rights reserved 신장위구르 우룸치 천산천지

중국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알맞은 비유가 있다면 서쪽 끝에서 황하가 흘러 동쪽으로 나오는데 그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라고 합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많은 것을 담고 있어 유동적으로 여러 민족이 함께 한다고 생각 되어집니다. 티벳, 신장위구르, 몽골, 그리고 남방의 여러 민족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현재의 주류세력인 한족들과 교류하며 현재의 중국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신장위구르지역은 고대 한나라시대부터 교역을 위해 군사거점을 두어 교역길을 장악하여 외부에서 오는 교역물들을 독점하였죠. 이게 실크로드라고 불리는 서역과의 교역로입니다. 이 거점을 두고 많은 전쟁과 다툼이 있었으며 이 땅을 한때는 티벳이 장악하여 당나라를 위협하기도 하였습니다. 신장위구르지역의 허티엔지역, 키질석굴, 트루판의 천불석굴, 둔황 막고굴, 장예의 대불사에서 티벳불교의 영향력을 볼 수가 있습니다.

북부티벳과 마주 한 신장이라는 지역은 국가라는 개념으로 해석되어질 수 없는 복잡하고 미묘하고 다양함이 있어 여러 가지 색의 실을 얼기설기 엮어 화려한 양탄자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신장이 지니고 있는 지리적인 요건과 풍부한 자원을 활용하는 신장만의 독특함이 들어 있습니다.

중국 한무제로부터 북방의 유목민족인 흉노로부터 오는 위협의 완충지대를 찾아나가 군영을 건설하고 훌륭한 군마를 공급받는 보급기지 정도로 여기며 신장지역에 대한 역사의 기록을 남겨왔습니다.

한족들이 건국한 왕조(한, 당, 명나라)에서의 신장에 대한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고 도리어 신장지역의 물자(군마나 가죽,직물들 그리고 유럽이나 인도지역에서 들여온 문물 종교가 있겠죠.)를 공급받기 위해 많은 물자를 이들에게 제공하였었고 신장 사람들은 이런 물자들(실크,종이,도자기등)를 서역으로 교역하였었죠. 이들은 이러한 교역을 통해 풍요를 얻었고 이들을 지배하고자 하는 침략자들과 지배계급에게는 세금을 걷어들이는 보물창고 같았을 것입니다.

이민족들이 중국을 지배하던 시기(원,청나라)에는 강력한 기마군사력으로 신장지역을 정복하여 지배함으로 다민족국가를 형성하여 그들의 자치를 인정해주며 종교와 경제활동의 자유를 주었다는 것이 한족왕조 아래에서의 신장지역 및 티벳지역은 만리장성밖에 있는 민족으로 배척하였고 천시하며 정벌의 대상이였습니다.

현대의 신장은 여전히 중국의 변방으로 외세의 침입에 대한 완충지대역할을 하고 있다. 19세기말,20세기 초반에 신장지역이 제정러시아와 소련의 영향력이 미쳤다는 것에도 꽤 흥미로운 사실이며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이슬람국가인 투루크제국 터키까지 정치적,지역적,종교적으로 관계하였다는 것이 이 지역의 복잡함을 대변해 주는 것 같습니다.

(c)2006주창민 All rights reserved 신장위구르 빵 만드는 현지인

중국 란주시에 있는 대형백화점에 간 일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만난 높다란 콧매에 부리부리한 눈망울을 한 예쁜 중앙아시아계통의 아가씨와 예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들에게 유학생이냐 물어보니 이들은 신장 우루무치에서 왔으며 "워먼스 중궈어런" "우리는 중국사람입니다."라고 당당히 예기하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외국인인 제가 이들을 바라볼 때 이국적인 풍경에 낡고 오래된 것들을 찾아 나서지만 이들은 지역의 발전과 풍요를 생각하며 지역을 개발하고 선진문물을 배우러 중국의 도시로 나오는 것이라 유추해봅니다. 외국을 나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깐요.

2006년에 신장지역을 여행 할때 시골 마을에서 만난 줄리아 로버츠를 닮은 위구르 소녀는 그때 드라마 “대장금”을 보고 한국을 알게 됐고 중국말을 배우며 학교를 다니는데 커서 의사가 되겠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건내 준 한마디는 의사가 되어서 너희 민족들을 위해서 일을 하라며 격려를 하였었습니다.

(c)2006주창민 All rights reserved 신장위구르 카작민족의 목동
(c)2006주창민 All rights reserved 신장위구르 카작민족의 목동

또 하나 2006년 여행에서 우루무치 중앙 바자르시장 광장에서 공연하는 가수의 목소리는 우렁찼으며 첨탑 사이로 줄을 연결하여 거침없이 줄타기를 하는 모습, 한밤에 신장 시골에 도착하여 여관을 찾으러 돌아다니는데 마을회관 같은 곳에서 북적북적거리는 노랫소리과 웃음소리로 들썩였던 그곳의 인상들과 2013년 가을에 중국 서안을 여행할 때 회족거리가 있는데 이 앞에 조그만 광장에서 밤이 되니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는 신나는 음악을 틀고 춤을 춥니다. 음악과 춤을 보니 위구르음악과 춤 이였습니다. 그러나 춤추는 이들은 회족들아니면 한족들이더군요. 원래 자기네 민속춤인 마냥 전통의상도 갖춰입고 열심이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양새가 다른 신장에서 온 위구르족 청년들이 엷은 미소를 띠며 보고있다. 위구르 사람들은 춤추고 노래하는걸 꽤나 좋아하는데 이들은 그냥 쳐다만 보고 있더군요. 다른곳에서 한무리의 위구르 사람들이 지나갈 때 회족사람들이 춤을 권하니 살짝 어께춤만 추고 그냥 지나갑니다.

여기에서 보면 이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이는 이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방법이고 이유이기도 하리라 여겨집니다. 이는 신장위구르사람들뿐만 아니라 티벳지역에서 사는 많은 티벳인들의 심리도 이러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지역에서는 다수를 이루고 살지만 소수민족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좀더 나아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주창민 대전 빛그린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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