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뜨랑제의 SNS미술관] 허수아비- 고야
[에뜨랑제의 SNS미술관] 허수아비- 고야
  • 김기옥 사유담 이사
  • 승인 2019.08.20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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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옥 사유담 이사] 장식성이 강한 로코코는 무조건 곱고 예뻐야 했다. 아기자기하고 발그레레한 여인들이 주인공일 때가 많았다. 어둠의 고야가 저렇게 도자기 그림같은 맑은 날을 그렸다.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고야에게 초상화 그리기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얼마나 인기가 있으면 왕의 차례 조차도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했다. 말도 안되지만 사실이 그랬다. 카롤루스 4세는 감질났는지 수석 궁정화가로 삼아버렸다.

데뷔 초기 흑역사라고 할만큼 고야스럽지 않지만 사실 긴 시간 맑은 그림을 그렸던 고아였다. 그렇게 프라도의 대표작이 되어 고야 특별전의 포스터로 인기스타였다. 그러나 한국에선 자료가 없다. 이름이 허수아비인 것도 의역했다. 그럴 땐 영어로 된 위키피디아를 타고 들어가서 세상 오덕들과 만나면 된다.

귀한 댁 따님들은 넓은 천을 들고 튕기기 놀이를 하고 있다. 처음엔 소년인 줄 알고 험하게 논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제목을 보니 튕겨쳐지는 아이는 인형이었다. 손발이 뒤틀어지고 무게감 없는 몸이 그러고보니 영락없는 인형이었다. 표정없는 가면은 어쩌면 고야 자신이었을가? 부족한 건 없으나 답답한 하루하루가 의미없었을까? 저 색감만 유지했다면 고야는 탄탄대로를 달렸을 것이다! 곱게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고야는 그렇게 순응하고 살기에는 까칠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 예민한 눈으로 처음엔 살궁리에 몰입하다가 살만해지니 비로서 자신이 가야할 길을 보았다. 안 갔으면 좋았을 길이었다. 사람 머리에 의식이 들어가면 사람은 가슴이 시키는 대로 걸어가게 되어 있다.

그 때부터는 모 아니면 도였다. 양심필터는 돌아가면서 공기를 정화할 것이고 자신이 정화할 수 없는 단계가 오면 부서질 것이다. 그래도 무표정하게 살아가느니 피가 흐르고 심장이 요동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역사는 가산점을 준다.

고야 역시 삶이 무료하면 못 사는, 태생이 이글대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따뜻하게 초상화나 그리고 테피스트리나 본 뜨던 바람둥이 고야는 현실에 정면대치했다. 개인적으로 봐서는 참으라 말하고 싶고 역사적으로는 그의 등을 토닥이고 싶다.

고야는 이제 변해간다. 아니 제 색을 찾아간다. 양심은 고야를 밀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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