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돈키호테를 찾아 Ⅱ, 꼰수에그라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돈키호테를 찾아 Ⅱ, 꼰수에그라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9.25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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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마을 언덕에서 바라본 라 만차의 평원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돈키호테를 찾는 여정이 까스띠야 라 만차의 마을에서 마을로 이어진다. 현대인은 과거의 그를 찾아 떠나고, 이미 지나가 버린 그는 숨바꼭질 마냥 조금씩만 흔적을 남긴다. 그렇게 돈키호테의 주막에서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곧이어 풍차의 마을로 떠난다. 멀리서 열 두 개의 풍차가 보인다. 큼직한 흑판용 하얀 분필이 나란히 산의 능선을 따라 줄지어 있다. 이곳은 꼰수에그라 마을이다. 풍차마을

잠시 파자(破字)를 해 보면, 꼰 Con은 ‘함께’란 뜻이고, 수에그라 Suegra는 시어머니 또는 장모를 뜻하니, 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동네라도 된다는 것일까. 아재개그일 뿐이다. 삼대가 주말에 모여 식사를 같이 하는 일은 흔히 보지만 모시고 사는 경우는 여기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각박해서가 아니다. 본인의 건강상태가 정정한 이상, 자기 하고픈 대로 사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손주는 예쁘지만 안 오면 더 예쁜 존재인걸까, 사람 사는 곳은 어디서건 비슷한 점들이 있다는 점에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풍차를 찾아보러 올라가보니 걸어서 가긴 좀 힘겨운 길이다. 그렇다고 차로 가기가 딱히 편하게 되어 있지도 않다. 길이 워낙에 좁아서 이곳에 수시로 찾아드는 대형버스 기사들은 언제나 미간엔 내 천(川)자가 그어질 법한데, 유유자적 언제나 이곳 사람들은 으레 원래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덕분에 마음 졸이는 건 언제나 내 몫이다. 유럽에 십 년을 넘게 살아도 여전히 내 뼛 속까지 스며있는 빨리빨리, 아니 부지런떠는 이 습관은 쉬이 바뀌어지지 않는다.

꼰수에그라의 풍차
꼰수에그라의 풍차

풍차들이 주욱 늘어선 꼭대기에 올라와 보니 바람이 야무지게 머리칼을 휘날리고, 산발하는 머리털은 뺨을 갈겨댄다. 하긴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그저 관광용의 풍차에 불과하지만, 그 옛날엔 실제 방앗간 기능을 하려면 풍차의 날개를 돌리기 위해 바람의 광풍 마냥 불어야 가능했을 것이다. 여기저기 긴 머리의 여인들은 벌써부터 광인이 된 머리를 보며 미친듯 깔깔대며 웃는다. 아무 말이 없어도 자연의 바람 한 줄기 만으로도 사람은 이렇게 웃음이 터지는가 보다. 아래 들판에선 때마침 거름이라도 푸짐하게 뿌려댔는지 평생가도 잊지 못할 고향의 냄새가 점막에서 향연을 이룬다.

자연의 손질을 받은 머리칼이건, 식욕을 확 줄일 냄새건 그래도 위에서 내려다 보니, 지평선으로 펼쳐지는 밭이 끝이 없다.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맞서 싸운 돈키호테가 환생한 거 마냥 당당하고 멋진 자세들을 취한다. 시원한 바람 속에 남녀할 거 없이 대장부가 되어 호쾌함을 펼쳐 보인다. 

기사 코스프레에서 시작한 알론소 끼하노는 돈키호테를 만들었다. 돈키호테는 또 하나의 자아였다. 돈키호테를 통해 끼하노는 진정한 자아를 찾았다. 그건 탁상공론이 아니었다. 직접 몸으로 부대끼고 실수투성이의 좌충우돌 속에 삶의 의미를 건져냈다. 돈키호테를 찾아 떠난 까스띠야 라 만차, 저마다 돈키호테의 마을이라며 내세운 이곳에 돈키호테는 없었다. 다만 그의 흔적을 찾으려고 직접 발품을 팔아 찾아간 내가 있을 따름이다.

Steve kim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환경에 매이지 않고 몇 번이고 깨지고 부서져도 결국 앞으로 나아가고야마는 키호티즘의 태도는 스페인만의 정신을 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유산이 되었다. 강자에겐 굽힘 없는 기상을, 약자에겐 사랑과 관용의 태도를 보인 돈키호테의 모습은 그저 깡마른 노인이 아닌, 세월만큼이나 가치있게 쌓인 인품과 기백이 깃들어 닮고싶은 어르신의 자화상으로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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