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전설 따라 삼천리, 산 조르디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전설 따라 삼천리, 산 조르디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10.24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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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사 바뜨요, 가우디
까사 바뜨요, 가우디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내 이름은 조르디, 이곳 스페인의 까딸루냐에선 나를 수호 성인으로 받들고 있지요. 내 이름은 나라마다 다르게 불려져요. 독립시위로 한창 이슈 중인 이곳 까딸루냐에서는 조르디 Jordi이지만, 스페인 전체에선 나를 호르헤Jorge 라고 부르지요. 삐레네 산맥 위로 넘어가서 프랑스에서는 죠르쥬Georges 라고 하고요, 독일에선 게오르그Georg 라고 불러요. 바다 건너 영국에선 조지George라고 하는데, 아주 흔하디 흔한 이름이지요. 유럽 문명의 기원인 이탈리아에서는 지오르지오Giorgio 라고 하는데, 이 역시 여러분 귀에 제법 익숙할 거에요.

나는 실존 인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전설로 더 많이 알려져 있어요. 나를 찾으려면 까마득히 먼 옛날로 가봐야 해요. 여러 이야기 중 하나를 들려드릴게요. 옛날 옛날 호랑이 담배 태우기도 한참 전에 이곳 까딸루냐에는 독을 내뿜고 입김으로 사람을 죽이는 아주 못된 용이 살았답니다. 감히 누가 대들 수 있었겠어요. 하여 그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해 다들 두려워하며 살았지요. 

그런 용의 성질을 잠재울 유일한 방법은, 매일 한 사람씩 마을의 처녀를 용에게 바치는 거였답니다. 한달에 한번도 아닌 하루가 멀다하고 잡아가니 아가씨들이 자꾸 줄어들게 되었어요. 그러다 결국엔 공주가 용의 제물이 되는 일이 생기고 말아요. 

남 보낼 때는 어쩌지 못했던 왕도 자기 자식을 보낼 차례가 되자 절박했는지 전국에 공문을 보내 자신의 공주를 구해준 자에게는 공주를 신부로 주고 뭐든 원하는대로 주겠다 했어요. 그 소식을 듣고 많은 기사들이 찾아왔지만 다들 상대가 안 되었지요. 백마 탄 기사인 저 조르디가 아니고서 그 누가 대신할 수 있었겠어요. 눈부시도록 하얀 말을 타고, 멋진 갑옷을 차려입은 저는 제가 믿는 신이 함께 하기에 두려움이라곤 1도 없이 제가 가진 검과 창으로 용을 무찔렀지요. 결국 약속대로 저는 공주님을 신부로 얻었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답니다… 이렇게만 끝나지 않고요, 카톨릭의 나라 스페인답게 저는 제 믿음을 전하는 데까지 소임을 다 했어요. 

용과 성 호르헤 (산 조르디), 루벤스
용과 성 호르헤(산 조르디), 루벤스

제가 용을 무찔렀을 때 용의 몸에서 피가 흘렀는데, 그게 땅으로 스며 들자 이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매우 진한 빨간 장미가 피어났답니다. 마을을 구해 영웅이 된 저는 그 장미꽃 한 송이를 꺾어 공주에게 전했지요. 그리고 저는 까딸루냐의 수호 성인이 되어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작가와 화가에게 영감을 주는 소재가 되었어요. 

저의 축일은 4월 23일인데, 때마침 그 때는 세계 책의 날이기도 해요. 바로 스페인의 대문호 세르반테스와 영국의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날은 달랐지만 세상을 떠난 날은 4월 23일로 동일해서 훗날 사람들이 그 날을 책의 날로 기념하기 시작했지요. 그래서 까딸루냐에서는 발렌타인 데이 보다 더 멋지게 연인들이 서로에게 장미와 책을 건내며 4월 23일의 기념일을 보낸답니다.

근사하게 식사하고 나와서 갑자기 왠 용과 기사의 전설이냐고요? 바로 가우디 선생님의 걸작, 까사 바뜨요의 테마가 이 몸 산 조르디와 용의 이야기거든요. 그냥 밋밋한 건물이 아닌 외관에서부터 입이 떡 벌어지게 만들고, 그냥 예쁘기만 한게 아니라 발길 닿는 곳마다 스토리텔링이 펼쳐지고, 집안 구석구석에는 눈길 닿는 곳에는 천재 건축가의 세심하다 못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혼이 깃든 종합예술작품을 감상하러 함께 들어가 보시지요. 

Stev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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