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12시간의 축제, 결혼식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12시간의 축제, 결혼식
  • 여행칼럼니스트 김덕현
  • 승인 2019.12.12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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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거행된 성 프란시스코 대성당 내부.

세상은 둘로 나뉜다. 솔로와 커플. 모태솔로, 혼밥, 혼술로 대표되는 싱글의 세계와 캠퍼스 커플, 커플티, 커플링 등의 커플의 리그가 있다. 곧 있으면 솔로천국 커플지옥을 바라는 크리스마스가 온다. 세상에서 축제와 파티에 환장하는 열정적인 스페인에서 솔로 또는 커플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걸까.

마드리드에 사는 동안 두번의 스페인 결혼식에 참석했다. 한번은 스페인 신랑과 한국인 신부의 결혼식이었고, 또 한번의 스페인 현지 부부의 행사였다. 일단 여기선 결혼식 청첩장을 주고 받는다는 건 신랑신부측이나 하객측이나 서로 상당한 부담을 갖는다는 걸 뜻한다. 그저 오셔서 자리를 빛내 주세요 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는 건 그들 사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당 최소 100유로를 부담해야 했다. 그게 7년전 축의금이고 지금은 더 올랐다.

스페인에 온지 얼마 안 되어 모든 것에 서툴던 그 때, 독일에 사는 한국인 직장 동생에게 마드리드에서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받았다. 단순한 하객으로가 아닌 겨우 5살 밖에 안 되던 큰아들을 두고 신랑 신부의 반지를 전해주는 화동으로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반지 전달이 무슨 큰 일일까 싶어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아들에게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그렇게 화동 부탁을 받은게 결혼식 일년 전쯤이었다. 참고로 필자는 두번째 데이트만에 결혼 얘기를 자연스레 했고, 그렇게 교제를 시작해 결혼식까지 일 년이 채 걸리지 않아 결혼식 준비만으로 일년 정도의 시간을 가진다는게 신기했다. 반대로 그들 눈에는 내가 너무도 특이했을 터였다.

식이 있기 6개월 전에는 신랑 신부가 참석한 가운데 아예 시댁 부모님까지 만나 거하게 식사하며 반나절 정도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되짚어보니 화동으로서 내 아들 녀석이 과연 적합한지 여부를 가려보는 일종의 심사시간이었던 셈이다. 군인 출신의 시아버지는 여느 남자처럼 결혼식이라는 큰그림 하나만 가지고 있지만, 시어머니는 한국 남아와 스페인 여아의 옷 맞춤부터 보수 카톨릭 집안으로 행사 순서는 물론, 주례사인 마드리드 한인 성당 사목 신부님과 면담, 연주단의 식순에 맞는 곡목까지 아주 꼼꼼하게 점검하셨다. 심지어 한국인 며느리의 스페인어 실력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이르렀는지 수시로 전화로 확인할 정도였다. 결혼 전부터 원격으로 시집살이가 시작된 셈이다.

화동인 아들의 옷에 대해서도 물어보셨다. 신랑 신부 앞에서 꽃을 뿌릴 스페인 여자 화동과 커플로 파란색 자켓에 흰색 바지를 사줄테니 입어보겠느냐는 스페인 시어머니의 제안에 나는 한국 신부측을 대표하는 의미에서 한복을 입히겠다고 했다. 그러자 한복입힌 사진을 일단 보내달라고 했다. 어찌보면 과한 부탁 아니냐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역지사지로 생각해 본다면 나 역시 충분히 그랬을 것 같다.

결혼식이 거행된 성 프란시스코 대성당 외부.
결혼식이 거행된 성 프란시스코 대성당 외부.

일 년 전부터 준비한 결혼식이 마침내 열리던 날, 그 날은 마침 필자의 생일이기도 했다. 양가가 카톨릭 집안이라 결혼식 장소도 마드리드의 성 프란시스코 대성당에서 가졌다. 결혼식장에 가보니, 세상에, 할리우드 배우들이 다 모인 줄 알았다. 여성들은 온통 시퍼렇고 새빨갛고 샛노랗게 화려한 색상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색깔맞춤을 기본이요,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분들은 스페인 전통 머리 장식까지 올려 한층 크게 보였다. 남자들은 에스콰이어 잡지에서 방금 나온듯 모두 양복에 행커치프까지 갖춰 세련되 보였다. 이렇게 과할 정도로 치장을 하고 와도 되는가 싶어 물어보니, 하얀색은 오직 신부를 위해 남겨두고, 턱시도는 신랑만 입는 것이었다. 스페인에서 수수하게 입고 온다는 건 신랑신부를 위한 예의가 아니다. 하객들도 할 수 있는한 가장 멋지게 차려입고 나와야 그들의 도리를 다 한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어설픈 양복을 입느니 한국 신부측을 생각해서 한복으로 입고 갔었는데, 이게 신의 한 수 마냥 대박이 터졌다. 현지인들에게 겹겹이 둘러쌓여 아름답다, 멋지다는 얘기를 연거푸 들었다. 스페인의 시부모측에서도 우리가 한복을 입고 온 것에 무척 만족하고 감사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독일에 살고 있는 스페인인 신랑과 한국인 아내의 국제 결혼식은 양가 어르신과 친구, 동료를 위해 한국어, 스페인어, 독일어, 무려 3개국어로 진행했다. 스페인어를 못 알아 들을텐데도 신랑 신부의 반지가 있는 작은 쿠션을 들고 얌전히 잘 따라가는 화동인 아들을 보며 내심 흐뭇했다. 문제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흐뭇함이 놀람을 넘어 두려움으로 갔다는 점. 스페인식 결혼식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필자로서는 반지만 전해주고 자리로 돌아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식 시작할 때부터 가더니 무려 두 시간 반을 꼼짝않고 앉아 있는게 아닌가. 꽃을 뿌린 여자 아이는 꽃만 뿌리고 돌아왔는데, 반지 전달은 식 마지막에야 하는 거라 그 때까지 자리를 절대 뜰 수가 없었던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안절부절 못하던 아비와는 달리 다섯살배기 자식은 끝날 때까지 요지부동이었다.

대성당에서 성스런 예식이 끝난 후 결혼식 피로연은 프라도 미술관 옆 리츠 호텔에서 열렸다. 호텔 앞 정원의 그랜드 피아노에서는 라이브 음악이 한창이었다. 맵시있게 맨 보우 타이에 은빛 머리칼의 피아니스트는 영화에서 보던 장면 그대로 이것이 피로연용 연주다 라는걸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는 부지런히 와인과 샴페인 잔을 나르며 다양한 핑거 푸드를 선보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연회장으로 안내를 받았다.

연회장은 이미 테이블마다 어디에 앉아야 할 지 밖에서부터 번호와 이름이 써져 있었다. 자리에 앉자 전식, 본식, 후식으로 메뉴가 진행되는 동안 신랑측 부모가 하객들을 돌아보며 올리브 오일과 와인을 선물로 전했다. 와인 라벨에는 신랑과 신부의 이름이 써져 있었고, 신랑측 선물 전달이 끝나자 이번엔 신랑과 신부가 선물을 전하고 있었다. 아이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아이들 별로 이름을 일일이 써서 따로 선물하는 걸 보고, 왜 인당 축의금이 최소 100유로인지 이해가 십분 되었다.

근사한 만찬이 끝나갈 무렵 사회자가 신랑 신부의 어렸을 때부터 연애까지의 사진을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웃음과 나직한 탄식이 여기저기 들린다. 영상을 마치자 사람들은 다른 연회장으로 옮겨 신랑 신부를 기다린다. 우아한 왈츠와 함께 신랑 신부가 먼저 춤을 추자 양가 부모도 함께 손을 맞잡고 눈을 마주하며 춤을 춘다. 하객들은 저마다 사진을 찍고 박수를 치며 새가정의 출발을 한껏 축복해 준다. 시간을 보니 신데렐라가 걱정할 자정은 이미 저만치 지나갔다. 결혼식 시작부터 12시간을 넘기는 축제의 현장에서 신랑신부 뿐 아니라 초대받은 커플 하객도, 그리고 나 또한 그와 다시 하나가 되었다. 저마다 사랑과 축복의 눈빛과 언어가 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김덕현 Stev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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