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Feliz Navidad!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Feliz Navidad! 
  • 김덕현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31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년 마음을 설레게 하던 성탄절이 지나갔다. 오가는 사람들은 "즐거운 성탄 보내세요!" 보다는 으레 "메리 크리스마스!" 라며 평소 수줍었던 모습도 이 때만큼은 예외인듯 즐겁게 외치며 다닌다. 스페인에선 뭐라할까.

거리에 흘러 나오는 캐롤에서 들어보듯 스페인어로는 "펠리스 나비닷 Feliz Navidad" 이라고 말하며 서로 껴안고 부비고 등을 두들기고 악수를 한다. 안 그래도 신체접촉이 많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연말은 더더욱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거리에서 모르는 사람과도 별 부담없이 인사를 주고 받을 정도이니. 

북유럽이나 동유럽의 나라들처럼 눈이 오지 않아 크리스마스 기분이 덜 날 것 같겠지만 대신 여긴 아기자기함을 맛볼 수 있다. 바로 벨렌 Belén 장식. 벨렌은 스페인어로 베들레헴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아기 예수의 탄생, 동방박사의 경배 등을 위주로 장식해 놓은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일반 가정에선 현관문 안 한켠에 자그마 하게 마련해 두고 성탄을 기다리며, 거리의 매장과 식당에서는 창가에 저마다 정성스레 장식을 하고 바삐 가는 행인들의 눈길을 잡아끈다. 

또한 스페인에선 크리스마스 때 대놓고 복권을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실제로 구입하기 위해 장사진을 펼치곤 한다. 스페인의 크리스마스 복권은 1등 상금이 400만 유로, 한화 약 52억원부터 시작해 전체 당첨금액이 무려 23.8억 유로나 되기에 (한화로 자그마치 약 3조원) 별명이 뚱땡이 El Gordo다. 상금규모가 워낙 크기에 복권도 장당 20유로나 된다. 

하여 스페인에선 크리스마스 당일 보다도 복권 추첨일인 12월 22일을 더 손꼽아 기다릴 정도다. 식당, 까페는 물론이요 회사에까지 번호를 정해놓고 산다. 그래서 보통 당첨이 되면 혼자가 아닌 그와 관련된 직장동료나 마을전체가 문자 그대로 잭팟이 터지곤 한다. 심지어 추첨당일 행사에는 어린 학생들이 나와서 종일 백만유로 노래를 부르며 중계할 정도이니 이들의 복권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이 간다. 

아무리 좋게 보더라도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면하긴 어렵겠지만, 당첨이 되는 경우 혼자만이 아닌 공동체에서 같이 나누는 경우가 많기에 오히려 훈훈란 미담의 사례로까지 소개가 되는 걸 보면 어찌보면 가끔은 이들의 경기가 정말 어렵긴 어려운가 보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마저 짠해질 때가 있다.

미국에선 추수감사절 때 먹는 칠면조를 스페인에선 크리스마스 이브 또는 당일 저녁에 먹는 전통이 있다. 식사도 식사지만 그들이 더욱 즐기는 건 식사 후 나눠먹는 온갖 달달한 간식, 바로 마사판 mazapán과 뚜론 turrón 이다. 마사판은 아몬드, 달걀, 설탕이 주재료인데 매우 부드러운 대신 하나를 먹으려면 에스프레소 세 잔은 들이켜야 될 정도로 맛이 달다, 아니 들큰하다. 뚜론은 마사판과는 달리 무척 딱딱하다. 스페인식 견과류 강정이라 볼 수 있는데 이젠 아예 전문매장까지 붐을 타도 생길 정도로 외국인에게도 인기가 있다.

가족과 친척이 함께 모여 오랜 시간을 두고 식사하는 가운데 그간 못나눈 얘기를 나누고 크리스마스 복권 당첨은 비록 안 되었더라도 일상의 행복을 맛보는 즐거운 시간. 아기 예수의 탄생과 동방박사 경배의 축복이 자신의 가정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벨렌 장식 앞에서 작지만 간절한 소원 하나를 빌어보며 스페인의 크리스마스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김덕현 Steve ki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