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선원의 용맹정진(勇猛精進)
상월선원의 용맹정진(勇猛精進)
  • 탄탄스님
  • 승인 2020.01.1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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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용인대 객원교수)

目無所見無分別
耳聽無聲絶是非
分別是非都放下
但看心佛自歸依

“눈으로 보는 바가 없으니 분별할 것이 없고
귀에 소리 없는 소식 들으니
일체의 시비가 끊어졌도다
분별심과 시비심을 모두 놓아버리고
단지 마음의 부처에 귀의하겠노라”

부설거사의 위의 게송(偈頌)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일찍이 “도(道)란 옷에 있지 않고 때와 장소에도 관계되지 않으며 오직 부처의 뜻에 따라 깊이깊이 참구하는 것”이라 한다. 재가 안거의 모범을 보인 선지식(善知識)을 이른다면, 주저함 없이 부설 거사라 해야 옳다. 인도의 유마거사, 중국의 방거사, 신라의 부설거사가 3대 재가거사(在家居士)이다.

안거(安居)란 수행자들의 여름 하안거와 겨울 동안거를 말하며 각 90일간 한곳에 은둔, 보림(保任)하면서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수행에 출가와 재가가 따로 있을 수 없고 불제자 수행인 이라면 일정기간 동안 이나마 바쁜 일상 속에서라도 마음공부의 적기인 안거 수행에 참여해야 한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하지 않아 비록 몸은 삼독(三毒)의 불길이 치성한 도심속에서 살지라도 마음은 오로지 한 곳으로 집중하여 일심이 될 때 우리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참나(眞我)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재가에서 안거하는 동안에 청정한 정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부처의 대자대비(大慈大悲)한 광명에서 생활하고 염불(念佛)한다는 믿음이며 <원각경> ‘원각보살장’에도 대중과 함께하지 않는 안거에 대해 “청정실상(淸淨實相)에 머물러 대원각(大圓覺)으로 가람(伽藍)을 삼아 안거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세간의 사람들은 관심사에 따라 마을을 이루고 소통을 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마을은 곧 공존의 공간이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그곳에서는 오케스트라와 같은 다중(多衆)의 리듬이 어우러져야 고운 화음이 되지만 강약과 고저장단이 어우러지지 못한 리듬은 불협화음(不協和音)이 된다.

세상의 역사 속에서도 대립과 반목과 질시가 그러했으며 종교에서 또한 주도권에 대한 시비도 그러한 이치이다. 제소리를 조금 더 키우려 고운 리듬과 화음을 깨는 ‘돼지 멱따는 소리’는 어디에서고 있다. 하물며 깨우치지 못한 중생계(衆生界)에서 제소리만 내려는 부류는 있기 마련이며 제 잘난 맛에 남의 입장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리듬감 없는, 박치며 음치도 있을 수밖에 없는 이치이다.

소음에 가까운 불협화음이 연주되는 이 시대에 다시금 소리와 리듬의 중요함을 인지하고 좋은 리듬감으로 사람들을 살리려는 지휘자의 존재감에 응당히 귀의(歸依)하기 마련이다. 예전의 어느 왕이 음악으로 민심을 측정하고 음악으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했으니 서로 조화를 이루며 존중하던 시대의 일이었다. 불문(佛門)에서도 새벽이면 쇠북을 두드리고 범종을 울리며 도량을 돌고 목탁을 치며 독경을 하는 것도 어쩌면 시대와 어우러진 세상을 열고자 하는 위대한 몸짓이 아닐 수 없다.

수도 서울 언저리 하남(河南) 땅 위례(慰禮)에 참다운 대중의 소리와 리듬의 중요성을 깨우쳐 세상의 소리로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고운 화음을 이끌려는 선문(禪門)을 열어 뭇 중생들에게 명경수(明鏡水)처럼 청량감을 주고 있으니 명실공히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이을 위례의 새로운 마을에 세우는 신도시 포교도량이며, 신행의 거점 도량으로 우뚝서야 할 당면의 과제를 안은 ‘상월선원’이니 문화의 조화로움과 삶의 지혜가 공존하는 위례 신도시의 상징으로 탈바꿈할 것이 자명하다.

삼국사기에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하남위례(河南慰禮)에서 건국되어 기원후 475년에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493년간 오늘의 서울을 수도로 삼았으며, 훗날 왕도(王都) 이름을 위례성(慰禮城)에서 한성(漢城)으로 바꾸었고, 사학계에서는 493년간의 역사를 한성도읍기(漢城都邑期) 혹은 한성백제시기(漢城百濟時期)라고 부른다.

이처럼 위례(慰禮)는 조선(朝鮮)이래 600여 년의 도읍지로 한양(漢陽)보다도 훨씬 오래전 백제,고 구려, 신라가 자웅(雌雄)을 겨루던 삼국시대 무렵 2000여 년 전 백제초기의 도읍지였던 셈인데, 이렇게 유서 깊은 위례땅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스님네들의 결연한 결사(結社)가 진행되고 있다.
‘서리(霜)를 맞으며 달(月)을 벗 삼는다’는 의미에서 ‘상월선원(霜月禪院)’이라 붙여진 이 천막도량에서는 서리뿐 아니라 설한풍(雪寒風)의 추위를 능히 견뎌내야 한다니, 이름하여 ‘기해년 동안거 상월선원 천막결사’이다.

근래 위례 신도시 상월선원에서는 바쁜 현대인들이 하루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핸드폰을 꺼둔 채 잃어버린 자아를 마주하는 참선수행(參禪修行)이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하며, 개설된 1박2일 무문관 체험은 신심(信心)이 돈독한 불자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수행 풍토가 조성되었다. 수행이 꼭 비구, 비구니 만의 전유물은 아니듯 우바이, 우바새 등 ‘재가안거 수행열기’가한국불교의 새로운 신행문화 조성과 이후에도 수행풍토 진작의 커다란 전기를 마련하였다.

제방의 선원 입구에 ‘한인물입(閑人勿入)’이라 ‘볼 일 없는 사람은 들어오지 말라’는 뜻으로 새겨 놓은 말에서 흔히 엿볼 수 있듯이 수행을 함에 수마(睡魔), 사심잡념(邪心雜念) 등의 마장(魔障)을 타파해야 하듯, 당나라 장사 선사(禪師)의 게송의 한 대목으로 목숨 건 수행을 독려하기 위해 선가(禪家)에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자주 인용하는, ‘백척간두진일보 시방세계현전신(百尺竿頭進一步,十方世界現全身)’의 화두(話頭)와 늘 씨름하며 치열하게 정진하고 있는 선방의 눈 푸른 수좌(首座)들에게 외부인들은 그리 달갑지 않은 존재이다.

그러나 위례 상월선원은 매일 외부인들의 야단법석(野壇法席)의 소란스러움과 건설 현장의 망치소리가 늘 시끌벅적함에도 심신의 고요를 찾고자 하는 수행열기로 엄동의 한파(寒波)가 멀찌감치 물러서고 있다고 한다.

道不在緇素
道不在華野
諸佛方便
志在利生

“도는 출가자의 물들인 옷이나 재가자의 흰옷에 있지 아니하며
도는 번화로운 거리와 초야에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부처님의 뜻은 중생을 이롭게 제도하는 데 있도다”

일찍이 신라 선덕여왕 때 태어난 부설거사가 이른바 있다.

‘선방의 문고리만 잡아도 삼악도(三惡道, 악업의 결과로 죽어가게 되는 괴로운 세계 세 곳)는 면한다’라는 말이 있으나, 치열한 수행을 통해 참 나를 찾고자 하는 수좌들은 외부인들의 출입을 잘 허락지 않는 데다 전통선원은 워낙 깊은 산 속에 있다 보니까 선방의 문고리조차 잡는 일도 쉽지 않았다. 

무문관(無門關)은 ‘문 없는 문을 뚫는다’는 뜻이다. 본래 중국 남송시대(南宋時代) 무문혜개(無門慧開) 선사가 쓴 선어록(禪語錄)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있지도 않은 문을 빠져나온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기필코 그 관문(關門)을 뚫겠다는 숭고한 의지뿐 아니라 목에 칼을 겨눈 서슬 푸른 심정에 힘입어 극한적 면벽(面壁) 수행을 일컫는 관용어(慣用語)로 자리하였다.

강원도 인제군 백담사(百潭寺) 무금선원(無今禪院) 무문관에서 선방문을 걸어 잠근 채 새로운 선풍(禪風)을 진작(振作)하시어 수행풍토 조성에 전념(專念)하시고 종문(宗門)의 행정수반(行政首班)을 두 차례나 역임하신 바, 종단의 최고위에 계셨던 이사무애(理事無碍) 걸림 없으신 큰스님께서 ‘상월선원’ 문밖에서 선원의 문을 굳게 잠그시고 3개월 한철 동안 용맹(勇猛)스럽게,하루 14시간 이상 치열하게 정진하며 극미량(極微量)의 공양(供養)으로 하루 한 끼만을 허용하고 승복도 단 한 벌로 삭발과 목욕은 금하고 양치만 하며 외부인과 접촉하지 않고 천막선방을 벗어나지 않고 묵언하며 온기조차 없는 냉동 창고 같은 열악한 환경이며, 용맹스런운 극한의 정진 현장에는 제방의 출가자뿐 아니라 전국의 재가불자들의 열렬한 응원의 발길이 연일 끊임이 없으며 수만의 인파가 파도처럼 밀려온다고 한다.

三伏閉門被一衲
兼無松竹蔭房廊
安禪不必須山水
滅得心頭火自凉

삼복 더위 문을 닫고 누더기를 걸치고서
송죽 숲도 시원스런 방사 또한 아니지만
하필이면 산수 좋아 편안해야 참선일까
마음 번뇌 사라지면 불이라도 서늘하리

당대(唐代)의 수행자 두순학(杜荀鶴)은 정확한 신분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평생을 두고 청빈(淸貧) 위주(爲主)하였다. 염천삼복(炎天三伏) 더위에도 문을 닫고서 누더기를 걸치고 정진하였다니 삼복더위만 해도 무더운데 하물며 문을 닫고 게다가 누더기를 입고 있으니 오죽이나 더웠겠나?

정진을 하는데 구태여 소나무나 대나무 숲도 있고 그늘에 있는 시원한 방사(房舍)가 아니라도 상관할 바 아니며 선정(禪定)에 드는데 있어서 반드시 산수(山水) 수려한 곳에서 공부해야만 할 것인가? 마음의 번뇌(煩惱)만 다 없애버린다면 불도, 추위도, 주림도 문제될 것이 아니며 또한 소란 스러운 시정(市井) 한가운데에서 화두(話頭)를 든다 해도 오히려 청량한 법락(法樂)을 즐길 수 있다는 게송이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말라버려도 좋다. 가죽과 뼈와 살이 녹아버려도 좋다. 어느 세상에서도 얻기 어려운 저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이 자리에서 죽어도 결코 일어서지 않으리라. 저희의 맹세가 헛되지 않다면, 이곳이 한국의 붓다가야가 될 것이다.”

고불문(告佛文)에서 처럼 물질문명이 극에 달하여 인간의 존엄성은 황폐화 되고 말세적 징후가 도처에 난무하는 이때 해봉당(海峯堂) 자승(慈乘) 큰스님과 이미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구참(久參)이신 노장 성곡 화상(和尙)을 비롯, 목숨에 연연하지 않는 결사대중, 중진 스님네의 구도(求道)의 열정과 굳센 결기에 심연(深淵)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지극한 외경심(畏敬心)의 예배(禮拜)를 올리오며 엄동설한(嚴冬雪寒) 동장군(冬將軍)의 기승에도 꺾이지 않는 대원력성취(大願力成就)를 불전(佛前)에 간곡히 기원하옵고 속히 폐관정진(閉關精進)으로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없는’ 선원의 문(門)이 활짝 열리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하는 이 미혹(迷惑)한 중생의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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