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참괴무안(慙愧無顔)한 정치인의 공양
[기고] 참괴무안(慙愧無顔)한 정치인의 공양
  • 탄탄스님
  • 승인 2020.01.27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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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스님(용인대 객원교수)
탄탄스님(용인대 객원교수)

불가에서 ‘공양’이란 공경하는 마음으로 부모, 스승, 조상, 이웃 등에게 향, 등, 약값, 음식처럼 필요한 것을 올리는 일을 말하며 좁은 의미로는 ‘밥을 지어 올리거나 먹는 일’도 공양한다는 의미로 널리 쓰인다.

싯다르타(悉達多)가 6년간 설산 고행을 마치고 처음으로 드신 음식이 죽이다. 인도의 우루벨라마을 네란자라(尼連禪河) 강변에서 마을소녀인 수자타(Sujata)가 올린 공양 ‘유미죽(乳糜粥)’ 한 그릇으로 원기를 회복하여 깨달음을 얻었었으며, 세납이 35세에 이른 석가족의 성자를 뜻하는 석가모니(釋迦牟尼)가 되었다. 

고려대장경 약 2400여 곳에 이를 만큼 죽에 관해 언급되었으며 ‘부처님이 유미죽을 드셨다’는 내용은 ‘본행집경(25권)’ 등 여섯 종류의 경전에 수록되어 있다. ‘인과경(3권)’에는 “하늘에서 천자(天子)가 내려와 소를 치는 여인에게 숲 속에 있는 보살에게 공양물을 바치라고 권하였다. 이 여인은 이 말을 듣고 자못 기뻐하여 유미(죽)공양을 바쳤다”고 한다. 

고행만 하시던 싯다르타가 죽을 드실 때 “몸이 나날이 쇠약해져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정수리에는 부스럼이 생기고 피부와 살이 저절로 떨어져 나갔다. 내 머리는 깨진 조롱박 같았다. 내가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깊은 물속에 별이 나타나듯 내 눈도 그러했다. 낡은 수레가 허물어지듯 내 몸도 그렇게 허물어져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 엉덩이는 낙타 다리 같았고, 손으로 배를 누르면 등뼈가 닿았다. 몸이 이처럼 쇠약해진 것은 다 내가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증일아함경 23권)

유미죽은 엄마로부터 젖을 땐 아이가 처음 먹게 되는 이유식의 일종이다. 미음(米飮) 또는 이유식을 먹음으로써 아이는 비로소 모체로부터의 분리, 그 일생의 첫걸음도 죽을 먹으며 시작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와는 분명 다르겠지만 붓다에게 유미죽은 고행으로 쇠잔해진 몸을 다시 추스르게 된 첫 음식이다. 보통 단식을 한 후에는 죽부터 먹는 것을 관례처럼 여기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여러 경전에 죽공양의 기록이  있는데 그 맛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러면 유미죽은 어떤 맛일까? 경전에 전하는 그 맛은 “비길 데 없이 감미로웠다. 그것을 마시고 나니 그의 몸에서는 새 기운이 솟아났다”라고 기록 되어 있다.

흔히 음식물을 먹지 않다가 먹게 되면 허기진 배고픔을 채우는 것이 앞서게 된다. ‘감미롭거나 기운을 차렸다’는 맛의 느낌은 죽 공양을 드신 직후보다 후일의 감정일 수 있다. 

‘진리를 구현하러 왔으므로 여래(如來)’,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이므로 세존(世尊)’ 등으로 별칭하여 부르기도 하는 붓다가 깨달음을 구하기 전에 받은 음식이 바로 유미죽이며, 수자타가 건넨 유미죽 공양을 드신 후 깨우침을 얻고 45년간 세상에 진리의 가르침을 전하면서 ‘모든 음식은 약’이라 했듯이 수행자들은 음식의 맛을 즐기는 것과는 좀 거리가 먼 입장을 지닌다.

붓다를 ‘마땅히 공양을 받아야 할 존재(應供)’라는 존칭도 있으며 음식이란 맛보다는 수행의 도구인 몸을 잘 유지하기 위한 약재로서 음식을 취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유미죽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수행자에게 바친 음식공양의 기원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수자타의 죽 (粥)’ 공양은 불교의 시작이며 깨달음의 음식이 아닐 수 없는 것 이다.

붓다에게 마지막 공양을 올린 이는 춘다이다. 춘다를 ‘캄마라푸타(CundaKammāraputta)’라 하며, 금세공업자 또는 대장장이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붓다께서 마침 자기 집 근처를 지나신다는 소식을 들은 춘다는 매우 기뻐하며 붓다와 제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하여 정성껏 만든 음식으로 공양을 올리고, 붓다에게는 특별히 진귀한 수까라 맛다바(sūkaramaddava) 요리를 대접했다. 이 요리는 종파나 불교학자에 따라 달리 해석되곤 한다.

수까라(sūkara)는 돼지라는 뜻이며, 맛다바(maddava)는 부드럽다 또는 맛있다라는 뜻도 지니며 따라서 이 음식 이름은 ‘부드러운 돼지고기’ 또는 ‘돼지가 좋아하는 음식’이란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하며, 두 번째 경우로는 버섯, 송로(松露), 얌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붓다의 마지막 공양이 돼지고기였다는 해석은 주로 상좌부전통에서 받아들여졌고, 채소 음식이었을 것이란 해석은 대승불교에서 받아들였다. 필자의 개인적 의견일 뿐이지만 춘다가 붓다에게 공양으로 올린 음식은 자신의 집안에서 바로 꺼내 온 것으로 보아 일상적으로 요리해 먹는 채소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복어요리처럼 맹독이 들어있어 조심스럽게 요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찌되었든 춘다가 대접한 음식을 드시고 병을 얻은 붓다는 심한 설사 증세를 보이게 되지만, 연로하여 병든 몸으로 나머지 여정을 계속 이어가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를 수밖에. 이에 붓다의 제자들이 화를 내며 춘다의 공양이 복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비난 하자 붓다는 아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를 제지한다.

“춘다는 이 공양으로 큰 공덕의 과보를 받을 것이다. 내가 도를 이루었을 때 처음 공양한 사람이나 내가 열반에 들려 할 때 마지막으로 공양한 사람이나 그 공덕이 서로 다를 수 없다.”

그러나 붓다께서 쿠시나가르(Kuśinagar, 拘尸那伽羅) 근교의 강변에 도착할 때까지 무려 25번이나 휴식을 취했다고 불전은 전하고 있어 붓다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쿠시나가르에 도착한 붓다께서는 결국 이 병이 원인이 되어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서 열반에 드셨다.

요즘 사람들은 건강염려증이 유별나며 섭생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이러한 때 사찰음식은 건강한 섭생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입맛과 건강한 삶을 지향하기 위해 먹어야 할 음식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그 맛을 떠나서 일체 인공 조미료를 쓰는 일이 없으며, 다양한 채식을 한다는 점, 특히 공기 좋은 깊은 산속에서 얻을 수 있는 싱싱한 채소들이 사찰음식에는 가득하기에 인공의 힘을 빌려 자라난 채소들과 비할 바가 안 된다. 또한 과식하는 법 없고 자극적인 향을 쓰지 않으니, 말 그대로 배를 적당히 채우되 음식에 대한 과도한 집착에서 멀어지는 그런 음식이다.

대승불교권역인 한국 불교의 장자 종단 조계종에서는 수행자인 스님이 사찰에서의 육식을 원칙적으로는 금하며 명시적인 계율(戒律)로서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기 보다는 불교 오계(五戒) 중 하나인 ‘불살생’(不殺生,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에 따라 다른 생명을 해쳐 음식으로 취하는 것을 금한다.

수 일전 한국당 측에서는 조계종에 육포 선물이 전달된 것을 뒤늦게 파악하고 당일 직원을 보내 해당 선물을 긴급 회수하가는 해프닝이 있었다.

웃어른이나 스승 또는 귀한 분께 특별한 날 선물을 보내려면 꽤 여러 날 고민을 하게 된다. 품목에서 부터 적정한 가격까지, 또는 보내는 방법까지 수차례 진지하게 고민하기 마련이다. 여러 번 고민은커녕 단 한 번의 살펴봄도 없이 백화점 담당에게 의뢰하여 실수를 했다는 것 은 구차한 변명이며 종교인을 대하는 예절에도 무례하기가 이를 데 없음이다.

자의반 타의반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황교안 당대표는 지난해 지방 모사찰의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에서도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두 손을 모아 상대방에게 예를 갖추는 불교식 예법인 ‘합장’을 하지 않아 종교편향 논란을 불렀던 인물이다.

결국 황교안은 절집의 반발이 거세지자 “미숙하고 격식을 잘 모르고 다른 종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며 스스로 자인을 했듯, 모르면 배워야 하고 다른 종교도 이해할 줄 모르는 지극히 편협한 인사가 어떻게 국민의 대통합을 이끌어야할 국가의 지도자로 자질이 있는지 의문이다. 공염불 같은 깊은 유감표명만 하지 말고 불교의 총본산 조계사 마당에 가서 석고대죄를 함이 마땅하다.

작금의 정치권도 조선시대 지배계급처럼 여러 파당으로 갈라져서 예전의 권력자들처럼 자기 목숨만이 아니라 삼족의 명운을 걸고 당권 투쟁만은 가열차다. 지금은 비록 한 평 남짓 옥에 갇힌 죽은 권력이 되고 철지난 야당신세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무소불위(無所不爲) 힘깨나 쓰던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까지 지내고 수 십 억을 뇌물로 쓸 정도로 재력가였던 성완종은 그들 내 이전투구(泥田鬪狗)에서 패배하자, 고위층의 비밀을 폭로하여 상당한 타격을 입히고는 정작 본인도 자살을 하는 불행을 자초했다.

트럼프와 미국의 지배계급도 갈수록 분열하여 서로 시끌벅적하게 싸우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일은 지배계급이 의도하고 기획하는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그들의 자기모순과 그로 인한 체제 불안이 일상적으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고, 역사적으로 이러한 갈등은 상당히 많은 사례가 있어 왔으며 심지어 ‘필연적’인 것이지 않겠는가?

위대한 스승 붓다께서는 항상 소란스러운 권력의 주변보다 인류를 구원하려 왕위를 헌 신짝처럼 내버렸지만, 언감생심(焉敢生心)기를 쓰며 권력과 조직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황교안 이지만, 소양과 자질은 좀 더 함양하여 국민에게 지탄이나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만은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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