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배 칼럼] 결혼주례 이야기
[김원배 칼럼] 결혼주례 이야기
  • 김원배 목원대학교 전 총장
  • 승인 2020.02.10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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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주례는 보통 신랑이나 신부가 평소에 존경하는 스승이나 성직자 또는 그 부모님이 잘 아는 분이 맡게 된다. 

주례자가 되면 식장에서 신랑과 신부가 결혼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주제로 주례사를 하고 그리고 하객들이 보는 앞에서 결혼선서를 시켜 성혼이 성립되었음을 선포해서 부부가 되었음을 알리게 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주례자는 형식적이지만 결혼식에서 꼭 필요한(그렇지 않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존재이다. 본 필자는 대학에서 35년여의 기간 동안 학생들을 교육하였기에 제자들의 주례를 많이도 서 주었다. 

필자는 대학교수로 1980년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부임하였기 때문에 초창기의 제자들 중에는 필자와 나이가 비슷한 학생들도 있었지만 그때는 학생들과 교수와의 관계는 깍듯하였다. 그래서 첫 주례를 1986년 5월에 보았으니 30대 후반에 첫 주례를 본 샘이다. 

첫 주례를 보지 않으려 이리저리 피해 다녔지만 교수님이 주례를 서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겠다는 엄포에 할 수 없이 첫 주례를 보게 되었다. 그 후 주례의 소문이 학생들에게 알려져 많은 제자들이 주례요청을 하였는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사양하였다. 

그런데도 대학을 정년퇴임 할 무렴 주례를 본 쌍이 90쌍이 되었으니 참 많이 보았다는 생각을 하였다. 주례를 허락하면서 내가 한 말은 둘이서 인종(忍從)의 미덕을 살려 잘 살고, 내 나이 회갑이 되었을 때 내가 주례를 본 제자들의 사진을 보아 병풍을 만들어 전원주택에서 부부 뿐만 아니라 자녀들까지 모아 잔치를 하겠으니 주례사진은 꼭 보내라는 부탁을 하였었다. 

그런데 이 약속은 병풍은 만들었는데 내가 전원주택을 마련하지 못해 부도가 났지만 호텔 음식점에서 연락이 닿는 제자들을 모아 식사하는 것으로 회갑연을 축소하여 약속은 지켰다. 주례를 보다 보면 참 많은 이야기 거리가 있다. 어떤 신랑과 신부는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여 좋은 여건에서 결혼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사업을 잘해 형편이 넉넉하여 주례대접을 잘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신랑과 신부는 학생신분으로 결혼을 하게 되어 궁색함이 눈에 보이는 어려운 결혼식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도 주례자가 본 신랑과 신부의 모습은 듬직하고 예쁘기만 하였다.

내가 주례를 선 제자 가운데 1992년 22번째로 주례를 서준 김만0 군이 있다. 그런데 이 김군이 금년(2020년) 구정 전, 갑자기 전화를 하여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평소 연락이 없든 제자의 전화라 궁금하여 무슨 일 때문이냐고 물어보았더니 교수님을 꼭 찾아 뵙고 말씀 드리겠다 하기에 시간을 정해서 집 앞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집에서 만나기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집 가까운 커피샵에서 만났는데 너무나도 반가웠다. 20여 년만의 만남인데 얼굴도 학창시절의 얼굴 그대로이고 큰 변함이 없었다. 차를 나누면서 지난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 만남의 이유를 말하는데 그 말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고 가슴이 울컥하는 미안함과 감사함으로 교육자로서의 보람을 느꼈다. 

커피샵 의자에 앉기 전 큰 절 하려는 것을 간신히 말리고 자리에 앉게 한 후 차 한잔 나누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김군의 이야기는 내가 한 주례사를 늘 생각하면서 살았고 그 말씀대로 해서 지금은 건설업종에 종사하며 회사의 중역으로 잘 살고 있다는 말과 결혼할 무렵 아기가 생겨 결혼식을 올렸는데 살기가 어려워 결혼 후 찾아 뵙지 못해 늘 부담스러웠다 하였다. 

주례하기 전, 결혼식이 끝난 후 결혼사진을 드려야 하는데 사진을 드리지 못해 항상 마음의 빛으로 남아 있었단다. 이제 살만하고 더 늦기 전에 찾아 뵈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학교에 전화를 해서 내 전화번호를 입수하여 전화 드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수님 건강하시라며 요즘 유행하는 황재침향원 한약 3통을 주었다.

나는 회갑 때 주례한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들의 사진이 들어 있는 병풍 앞에서 잔치해야 하겠다는 단순한 발상에서 비롯한 말 때문에 김군과 같은 어려운 처지에서 결혼한 제자들이 교수집을 찾아 올려면 과일상자라도 한상자 사서 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내 편한 생각들만 했다는 죄책감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김군을 만나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간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고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가는데 얼마나 큰 노력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잘 성장하여 대기업에 취직하여 걱정이 없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장하고 자랑스럽다는 생각에 잘살아 주어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격려를 해 주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사제지간의 훈훈한 대화 속에서 교육자로서의 보람을 느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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