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시론] ‘이현령비현령’식 아니길 바란다
[충남시론] ‘이현령비현령’식 아니길 바란다
  • 임명섭 주필
  • 승인 2020.02.19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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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이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한 판사에 대한 재판에서 연이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지금까지 재판부가 선고한 사법적폐 관련사건이 무죄라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된 판사에게 무죄를 선고 했다.  

기소된 판사의 행위가 ‘공무상 비밀 누설’로 볼 수 있느냐’였다. 하지만 검찰은 사법부를 향한 수사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법원행정처의 지시를 받고 조직적으로 수사 기밀을 파악해 유출했다는 판단으로 기소를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검찰이 언론을 활용해 수사 정보를 브리핑하거나 사법행정에 협조해 수사 상황을 알려준 점 등을 볼 때 비밀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을 대부분 인정하면서 해당 판사의 행위가 ‘위헌적이긴 하지만 직권남용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사법농단 수사 결과를 흔들 수 있는 내용이다. 사법농단 의혹으로 기소된 전ㆍ현직 판사 14명 가운데 지금까지 1심 선고가 진행된 4명에게 모두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 있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나머지 사건에서도 비슷한 결론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게 됐다.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와 ‘이현령비현령’ 식 법리 구성으로 판사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게 아니냐는 세간의 우려도 나올 수 있게 됐다.

법원과 검찰 간 여러 경로를 통해 수사관련 정보가 깊숙이 공유됐으며, 해당 판사들이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내용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기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없으며 따라서 기밀누설로 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 논리대로라면 어떤 재판 개입도 처벌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또 해당 판사 지시대로 재판 절차가 바뀌고 판결 내용이 수정됐는데도 ‘의무 없는 일’이라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부정한 것도 재판장 중심의 사법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다른 사법농단 재판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 법원은 ‘재판 독립을 침해해놓고 재판은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이다’는 모순된 주장을 인정하는 일을 되풀이해선 곤란하다. 최근 대법원은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파기환송 하면서 범죄성립 요건을 두고 엄격한 기준을 제시해 사법농단 재판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를 낳은바 있다.  

재판 개입을 비롯한 사법농단은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훼손하는 위헌적 사안이어서 형사처벌 외에도 탄핵과 징계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특히 사법농단 사태는 사상 초유의 일이어서 현행 실정법을 토대로 한 형사처벌은 연쇄 무죄판결이 쏟아진 지금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과 맞닥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한 판사에 대한 재판에서 잇단 무죄 판결에 ‘제 식구 감싸기’ 의도가 있다면 안 될 말이다.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남은 재판에서 공정한 잣대가 적용돼어야 한다.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조직 이기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현령비현령)식의 재판이란 느낌을 받아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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