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윤 칼럼] 포스트 코로나19, 생존의 길
[김성윤 칼럼] 포스트 코로나19, 생존의 길
  • 김성윤 前 단국대학교 법정대학장/現 단국대학교 명예 교수
  • 승인 2020.04.1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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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10권20편 500개의 문장으로 된 동양 최고의 고전이다. 그 위대한 고전의 첫 글자가 배울 학(學)자로부터 시작된다. 그 문장을 보면 학이시습지불역열호(學而時習之不亦說乎)로 그 뜻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다. 논어에는 배움과 관련된 말이 또 있다. 군자불기(君子不器) 학즉불고(學則不固)다. 지식이 협소한 사람은 자칫 자신의 좁은 시각에 사로잡혀 완고한 사람이 되기 쉽다. 그런 사람은 사고와 판단에 유연성이 떨어진다. 그러니 학문을 갈고닦아 유연한 머리로 진리를 배우라고 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배운 사람은 시야가 넓어지고 식견이 깊어져서 객관적인 사리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의미부여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서 뭐니 뭐니 해도 배운다는 것처럼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은 없다.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길, 새로운 방법을 알아 가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열어주는 것이요, 마음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이다. 우주를 보는 시야, 세계를 보는 시야, 자신을 보는 시야를 넓고 밝게 트여주는 것이다. 

배움의 정신은 세 가지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겸손의 정신이다. 21대 총선을 3일 앞두고부터 갑자기 교만이 주제어로 부상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배운다는 것은 겸손해 진다는 것이다. 세상사람 가운데 교만한 삶을 보라, 그들은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주역에도 겸수익(謙受益) 이라는 말이 나온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이익이 돌아온다는 말이다. 왜 배워야 하는가? 스스로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서다. 왠지 한국의 정치인들은 모르면서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배움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부족한 사람을 본 일이 있는가? 진리 앞에 겸허한 마음을 가지는 사람만이 열심히 배운다. 다른 하나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배운다. 사람은 누구나 위로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좋아 하는 사람은 없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승진하는 것에 즐거움과 보람이 있다. 장사 하는 사람은 돈을 잘 버는데 보람이 있다. 

예술 하는 사람은 더 좋은 작품을 창작하는데서 보람을 느낀다. 이 모든 것은 배움의 향상에서 나온다. 마지막으로 배운다는 것은 활동의 정신이다. 침체되고 우울한 사람보다 활동이 왕성한 사람이 배우려고 한다.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보람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는 말처럼 아는 것은 일을 잘 처리할 수 있다는 능력이요, 모른다는 것은 일처리가 미숙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이 같은 배움의 방법마저 달라지고 있다. 무엇보다 온라인교육의 가속화다. 지금까지 디지털세상을 알면 살아가는데 보다 편리하였다. 하지만 이젠 모르면 살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도태냐? 생존이냐? 와 직결되는 문제가 되었다. 코로나 100m 앱 하나면 가야될 곳과 주의해야 될 곳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마스크 앱 하나면 어느 약국에 마스크가 언제 들어와 현재 재고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있다. 디지털 정보를 모르면 눈뜬장님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온라인 사용법부터 배워야 된다. 현대인의 고질적인 병이 있다. 그 첫째가 모르면서 알려고 하지 않은 잘난 체 병이요, 둘째가 알면서 남에게 가르쳐 주지 않은 모르쇄 병이며, 셋째가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는 게으름 병이다. 

일찍이 공자는 배우는데 싫증을 내지 말고, 가르치는데 권태를 느끼지 말라고 하였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디지털을 배우고 즐거운 마음으로 디지털을 가르쳐야 한다. 또 한 우리는 배우면 바로 생각하고, 생각한대로 행동하여야 한다. 그것이 코로나19 이후의 생존을 담보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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