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논단] 장항산단, 그리고 대통령 발언에 대한 유감
[화요논단] 장항산단, 그리고 대통령 발언에 대한 유감
  • 권선택 의원
  • 승인 2007.02.05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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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5년 임기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정치사에서 비교 대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캐릭터를 가진 정치인이다.
1988년 13대 총선 당시 김영삼 총재가 이끄는 통일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정치권에 입문한 그는 청문회 스타로 명성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 3당 합당을 거부해 고난의 길을 자초했다. 뻔히 낙선할 줄 알면서도 지역감정이라는 현실정치의 높은 벽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를 밥 먹듯 했고, 2002년 대선에서는 장인의 인민군 부역 의혹을 제기하는 상대후보와 언론에 대해 “보지도 못한 장인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이라도 하란 말이냐”며 정면으로 맞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정치인 노무현의 이 같은 행동은 당시 화제가 됐던 ‘노무현의 눈물’이라는 광고 등과 어울려 국민들에게 ‘솔직하고 양심적인 정치인’, ‘사리사욕보다는 원칙을 지키는 인물’로 다가왔고, 결국 그는 아무도 예상 못한 극적인 승리로 대한민국의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대통령에 취임하고도 정치인 노무현의 독특한 캐릭터는 여전했다.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리 거센 반대가 있더라도, 아무도 자신을 따르지 않아도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 결과 사상 초유의 탄핵을 당하고, 지지율이 바닥을 쳤지만, 적어도 그는 위험이나 책임을 회피하는 법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여타의 정치인들과 달랐고, 역대 대통령들과도 달랐다.
충남 서천 앞바다 374만평을 매립해 공단으로 만들기로 한 장항 국가산업단지 조성사업이 표류한 지 올해로 꼭 18년이 지났다. 장항산단이 18년이 지나도록 아직 조성을 위한 첫 삽도 뜨지 못한데 반해, 같은 시기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바 있는 군산공단은 이미 조성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본격적인 가동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5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가진 기자회견서 장항산단과 관련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장항산단의 조기 착공을 위해 정치적 결단을 내릴 용의가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결단할 일이 있고, 기술적 검토를 거쳐 해야 할 일이 있다”며 “장항산단은 현재 기술적·경제적 검토를 하고 있는 만큼 조금 더 상세하게 지켜보고 결정할 문제이지, 감각적으로 정치적 결단을 할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사실상 정치적 결단을 내릴 용의가 없음을 밝힌 것이다.
대통령의 이날 대답은 가부를 떠나 몇 가지 점에서 참으로 실망스런 대답이라 아니할 수 없다.
먼저 장항산단이 기술적 검토 결과에 따라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장항산단의 표류 이유는 갯벌이 갖는 환경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에 대한 논란 때문이다. 가치체계가 상이한 두 가지 가치의 중요성을 기술적으로 비교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정부 부처간 이견이 팽팽한 현실에서 결국은 정치적 결단이 강요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대통령은 애써 외면한 것이다.
둘째, 형평성의 문제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 연말 전남 목포를 방문해 “서남권 개발을 위해 22조4천억원을 투자하고, 특별법 제정으로 뒷받침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 같은 구상은 경제적·기술적 문제가 충분히 검토된 방안이란 말인가.
노 대통령이 지난 세월 국민들에게 보여줬던 이미지는 언제나 본질을 중요시하고, 논란을 회피하지 않는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는 물론이고, 정치인 노무현 답지도 않은 실망스런 대답이었다.
18년간 사업추진이 늦어지면서 서천은 지금 오히려 금강 하구 둑과 군산외항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도류제의 영향으로 장항 쪽 앞바다의 생태계가 파괴돼 어장이 황폐해졌고, 장항항은 토사가 쌓여 어선의 입출항만 어려워졌다.
노대통령은 “기술적으로 검토할 일이 없고, 정치적으로 결단할 일이 있다”고 했으나, 나의 견해로는 “고민해 해결될 일이 없고, 고민해봐야 해결되지 않을 일”이 있다. 고민해도 해결되지 않을 일은 빨리 결단하는 것이 상수다. 장항산단에 대한 노 대통령의 결단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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