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논단]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교훈
[화요논단]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의 교훈
  • 권선택 기자 【 한국지식정보기술 학회장 】
  • 승인 2007.04.2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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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발생한 사상최악의 총기난사 사건은 우리에게 여러모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100여발이 넘는 총탄을 난사해 무려 33명을 사망하게 하고, 최소 17명을 부상시킨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꼭 한국계 교포 학생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1999년 4월 컬럼바인 고교에서 2명의 학생이 13명을 사살하고, 지난해 10월 우유 트럭 배달부가 웨스트 니켈 마인스 학교에 침입해 어린 여학생 14명을 살해하는 등 미국에서의 교내 총격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사건에 대한 관심은 미국사회나 우리나 별반 차이가 없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과 반응이 여러모로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도 각종 외신과 언론보도 등을 통해 현지소식을 접할 따름이지만, 사상 최악의 총격 참사를 맞이한 미국인들은 반응은 정말 뜻밖이다.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조승희를 향한 원망이나 분노가 있을 법도 한데, ‘살인마’라는 비난 같은 건 찾아볼 수가 없다. 대학 잔디밭에 조승희의 추모석이 다른 희생자들의 것과 나란히 마련되고, 그를 위한 애도의 편지까지 잇따르고 있으며, 특히 그의 부모들이 어려움을 이겨내길 기원하는 격려가 줄을 잇는다니, 우리네 정서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모습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미국 현지의 반응 중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특정인에 대한 책임 추궁이나 전가가 없다는 것이다. 학교와 경찰의 늑장 대응 논란이 제기됐지만, 특정인에게 책임을 추궁하거나 덮어씌우는 분위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버지니아 공대 찰스 스티거 총장은 학생들과 함께 추모식에 참석했고, 영결식에도 나갔지만 누구 하나 “당신이 대응을 잘못했다”고 탓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또 스티거 총장이나 경찰 책임자가 당장 물러나야 한다는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란다.
누구의 잘못이라고 ‘네 탓’을 하기보다는 “그토록 도움이 절실했던 조승희를 돕지 못해 미안하다”고 ‘탓’을 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많이 눈에 띈다고 하는데, 과연 우리나라 같았으면 이런 현상이 조금이라도 가능했을까.
유족과 언론의 반응도 한국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수많은 사람들이 추모석을 찾아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지만, “내 자식을 살려내라”는 식의 부르짖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희생자들의 장례는 모두 가족이나 친지, 교직원과 학생들만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치러졌으며, 언론의 장례식 내부 취재는 엄격히 금지됐다. 한국에서처럼 오열하는 유가족이나 조문객들의 모습은 전혀 방송되지 않았는데, 유례없는 참사에 대응하는 미국인들의 이 같은 태도를 단순히 문화적 차이라고 해석하기에는 왠지 마음이 편치가 못하다. 특히 이번 참사의 범인인 조승희를 애도 대상에 포함시키고, 그를 비난하거나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분위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성숙하고 우리보다 앞선 것임에 분명하다.
부끄러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사건으로 이해 한미관계가 악화되지 않을까 많은 염려를 했지만 이런 기우가 무색할 정도이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실시중인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한국의 책임 여부를 묻는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90%가 “한국이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답변했는가 하면, 한 유력일간지는 사설을 통해 “용의자는 미국에 어릴 때 와서 여기서 자랐다”며 “주한 미 대사관 앞의 촛불 추모식과 한국 대통령의 애도와 충격 표시는 감동적이지만, 더 이상 사과하지 말아 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절대로 그런 일이 있어선 안 되겠지만, 만에 하나 이번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한국에서 일어났을 때를 가정해 보자.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 중 한 명이 유사한 사건을 일으켰을 경우를 말이다. 단순히 이번 일이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안도하기보다, 선진사회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문화를 본받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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