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 논단] 문명의 그늘
[목요 논단] 문명의 그늘
  • 이인제 의원【 국민중심당 최고위원 】
  • 승인 2007.04.25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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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낮에도 섬광(閃光)에 노출되면 잠시 암흑을 맞는다. 미국 버지니아 공대에서 33명의 교수와 학생이 총격으로 사망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우리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정신은 혼미해지고 마음은 어두워졌다. 수많은 폭력 영화 속에서 이유 없는 살인 장면을 그저 가상공간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하며 보고 즐겼던 우리가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이어 이 끔찍한 살인이 한국인 젊은이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경악과 전율이 국내나 해외를 불문하고 우리 민족사회를 전류처럼 관통해버렸다.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의 빛이 일시에 사라져버리는 충격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오늘의 문명을 살아가는 인류의 한 사람으로 희생자 모두에게 한없는 애도를 보낸다. 그들의 명복을 빌고 또 빈다. 그 유가족들의 슬픔이 하루 빨리 치유되기를 기도한다. 혼란과 비통에 잠긴 버지니아 공대 캠퍼스에도 하루 빨리 평온이 찾아오고 다시 학문의 열정으로 가득 차기를 기원한다.
이 사건은 쾌속으로 질주하는 문명의 흐름에서 자신을 적응시키지 못하고 소외되며 고립되는 한 사람의 정신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병들 수 있다는 교훈을 이 사건은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분명하다. 이 사건은 인종이나 소수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질환의 문제이며 그 배후에는 현대문명의 그늘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인류 모두는 그 문명의 그늘에 쫓기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소외를 감싸 안는 포용, 실수를 용서하는 관용, 패자에게 부활을 허용하는 기회 그리고 다원적 세계관과 다양한 가치가 조화를 이루는 연대! 이러한 정신의 결핍이 현대문명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나는 우리 민족사회가 이 사건에 대하여 도덕적 긴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고통 받는 분들을 위해 더 열심히 기도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떤 죄의식을 갖고 위축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재미 한인사회가 이 사건을 더 높은 사회윤리로 무장하여 소수민족사회를 선도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위기를 기회로 만들 역량이 있다고 믿는다.
후기 산업문명이 지고 새로운 지식문명이 열리고 있다. 이 새로운 문명에는 이 같은 비극을 잉태시킬 그늘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할 수 없을까. 만들 수 있다면 그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 민족의 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사상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동양 고래의 이상인 대동주의(大同主義)도 그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오, 우주만물의 창조주여! 희생당한 사람들의 생명을 품어주시고 그들을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게 하여주소서! 또한 그들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무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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