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단] 지역정치와 지역주의
[수요논단] 지역정치와 지역주의
  • 류근찬 의원 【 국민중심당 정책위 의장 】
  • 승인 2007.05.01 1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25일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결과 지역으로부터 일으킨 파장과 파문이 중앙정치를 덮치면서 거대 야당 한나라당 조차도 뒤흔들어 놓고 있다. 실패를 모를 것 같던 한나라당이 연일 내홍에 휘말리는 것을 보면서 그 파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특히 대전 서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는 역대 대선에서 영향력을 발휘해 온 것처럼 이번에도 충청의 표심을 가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전국적 관심을 끌었을 뿐만 아니라 마치 대통령선거의 대리전 같은 양식을 띠었다.
대선 예비주자 두 명의 지지도 합계가 70%를 넘는 한나라당이 연일 대전에 총출동, 경선 대리전 성격의 치열한 전투까지 벌인 터였다. 그러나 치열한 전투에 비해 승패는 싱겁게 끝났다. 동원된 물량공세에 비하면 한나라당 후보가 국민중심당 후보에 맥없이 무릎을 꿇은 것이다.
필자가 이번 선거결과를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 것은 그동안 중앙정치에 짓눌려 숨조차 쉬지 못하던 우리의 지역정치가 이번 선거를 통해서 대한민국을 변화시킬 수 있는 희망을 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데 있다.
그동안 우리 의식 속에 고착화된 중앙정치의 관점에서 보면 애초부터 이번 선거는 싸움이 안되는 게임이었다. 시작부터 완패가 예상되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충청중심 정치’, ‘충청결정론’의 자존심을 외친 국민중심당 후보가 ‘정권교체’를 내건 한나라를 물리친 선거결과는 지역의 정치적 욕구, 지역을 단위로 하는 새로운 정치형태에 대한 지역민의 열망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다시 고개 드는 지역주의, 충청지역주의의 알박기라는 등의 말로 폄하하고 있지만, 선거운동 내내 현장에서 유권자들을 만나본 필자는 이같은 상투적인 수사에 전혀 동의할 수가 없다. 지역의 정체성을 잃지 말고 독자적인 힘을 길러 진정한 지역대변자로 나서달라는 준엄한 명령, 그것이 이번 선거를 가른 핵심이었다.
선진국에서도 지역에 둥지를 튼 정당이 국가경영을 훌륭하게 한 예는 독일이다. 기민당은 전까지 바바리아에서 아성을 구축한 자매정당 기사당의 도움아래 연립정권을 통해서 전후 독일의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독일통일까지 이끌어냈다.
지방이 중앙에 종속되지 않고, 지방과 중앙의 유기적인 협력관계를 필요로 하는 다양성과 독자성이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독일정치는 이처럼 중앙에 대한 지방의 경고를 통해 나라경영까지도 바꾸게 하는 역할을 해왔다. 독일 역사상 특정 정당에 대한 과도한 지지가 독재를 불러왔다는 역사인식 때문에 독자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다원적인 합의정치를 주문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에서는 모든 정당이 지역주의의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지역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지역사회에서의 갈등이 존재하는 한 지역정치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지역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의 등장 또한 필연인 것이다.
부패와 무능에 빠진 중앙의 기성정치를 교체하는 역할은 어쩌면 다양성과 독립성을 앞세운 지역정치의 성장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4·25 보궐선거에서 유권자들이 대한민국의 희망을 쏘았다는 말의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선거에서 지역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며 화려하게 부활한 국민중심당은 어쩌면 한국에서 한 템포 빠른 이념인 지방분권과 실용주의의 정책 실현을 내세운 최초의 정당이다. 그러나 시대상황으로 보면 때늦은 감도 있다. 부패한 국가운영, 부패한 정치에도 사망진단서를 발부한 것이 10년 전의 IMF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방으로부터 나라를 바꾸자는 국민중심당의 정책슬로건이 해방이후 고착화된 중앙집권적 전통의 한국정치를 바꾸려면 기득권 세력으로부터의 거센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몇 갑절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화석화된 기성정치를 바꾸고, 다양성과 독자성을 정치에 심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역발전을 위해서 뚜렷한 정책대안을 갖고, 지혜를 모은다면 한국 정치에 변화를 주도하며 어엿한 중앙정치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래도 지역정치가 지역주의란 말로 폄하돼야 한단 말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