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학교가 즐거워지고 있다(?)
[기자수첩] 학교가 즐거워지고 있다(?)
  • 차종일 기자
  • 승인 2007.05.06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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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친절하고 활기찬 00중학교 교사 000입니다”
백화점 콜센터의 안내 멘트가 아니다. 경기도 모 중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전화 응대 멘트다. 이 학교에서 추진하고 있는 즐거운 학교 만들기 사업의 대표적 방안이라고 한다.
학교에 전화를 걸면 ‘여보세요’라는 무뚝뚝한 목소리만을 들어야 했던 과거에 비하면 정말 놀라운 변화다.
그 뿐 아니라 이 학교에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학교 건물을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해 다양한 생활교양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가사실, 컴퓨터실, 시청각실 등 활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학교 공간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각양각색의 강의가 이루어진다.
이 또한 ‘즐거운 학교 만들기’ 사업의 일환이라고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이 학교는 학교혁신 모범학교로 선정되게 되었다.
즐거운 학교 만들기. 훌륭한 목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 학교가 과연 ‘누구를 위해’즐거워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학생인가? 학부모인가? 아니면 또 다른 누구인가? 학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대상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교육의 직접 소비자인 학생들이다. 따라서 ‘즐거운 학교 만들기’사업의 궁극적 목표는 학생들이 즐겁게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되어야 한다.
‘쾌적한 환경 속에서 재미있는 수업을 듣고 싶다’는 학생들의 바람을 우선적으로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현재 각 시도 교육청들은 경쟁적으로 다양한 연구학교, 모범학교, 시범학교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그 계획의 중심에는 한결같이 학생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외부에서 쏟아질 평가의 시선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그 시선의 주인은 학교 밖에 존재하는, 혹은 학교 안에 존재하는 어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에어컨과 대형 텔레비전을 설치해 달라는 선생님의 노력이 담긴 좋은 수업을 듣게 해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를 외면한 채, 친절한 전화 응대나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생활교양강좌를 주요사업으로 선정하는 것이다.
학교가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변화의 중심은 언제나 학생들의 필요와 요구 여야만 한다. 지금 우리의 학교는 학생들의 바람을 외면한 채 어른들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깊이 있는 반성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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