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언] 노동시장의 약속, 근로계약서
[제 언] 노동시장의 약속, 근로계약서
  • 대전지방노동청천안지청 근로감독과장 송 명 희
  • 승인 2007.05.30 1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사회는 점차 문서화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과거사회에서 많은 일들이 말을 통해 이루어졌다면 현대는 글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만큼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지만 조금만 다르게 생각하면 좀더 정교하고 세밀해졌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우스갯말로 전라도에서 거시기라고 하면 웬만한 것은 다 통한다고도 한다. 하지만 간혹 갑이 말하는 거시기를 을은 다르게 받아들여 결국에는 크고 작은 다툼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위험을 최소화하고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문자로 내용을 정리한다면 이것보다 명확한 것은 없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각종 각서, 차용증, 계약서 등이 생겨났고 이것도 모자라 공증이라는 제도도 생겼으리라.
노동시장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그대로 적용된다. 임금, 퇴직금 등을 지급받지 못해 지방노동관서에 방문한 근로자 중 상당수는 근로계약서의 존재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되는데 이에 대해 아니오라는 대답을 하는 근로자가 의외로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근로자들은 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을까.
근로계약의 사전적 의미는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대가를 받을 것을 조건으로 노무를 제공함을 약속하는 유상쌍무계약이다. 이 근로계약은 전세계약, 매매계약 등 다른 계약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며 대등한 인격체 사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 예외가 있을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업체에서 사용자가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다. 당연히 근로자는 사용자가 정하는 근로조건에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열세적인 위치에 있다.
상대적인 약자의 입장에 서있는 근로자가 입사하면서 근로조건을 조목조목 따져 사용자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근로자가 계약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계약체결을 하지 않으면 된다. 다시 말해 해당사업체에 취업하지 않거나 퇴사하면 되는 것이다. 근로계약도 하나의 계약으로서 복수당사자의 반대방향의 의사표시의 합치로써 이루어지는 법률행위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거부하면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로자 자신이 가진 노동력을 노동시장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발휘하여 그 대가를 많이 받는 방법은 근로계약이 가지는 위와 같은 양면성 사이에서 얼마나 중심을 잘 잡느냐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임금 등의 근로조건이 결정되면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서면계약서의 작성이다. 많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임금 등의 근로조건을 명시한 서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후일에 손해를 감수하는 것을 종종 보아왔다.
우리 근로감독관이 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는지를 물으면 대답은 한결같다. 소규모 사업체에서 일일이 계약서를 작성하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전세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아 전세금을 잃게 되었을 때도 같은 대답을 할 것인가. 아닐 것이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자신을 탓할 것이고, 작성한 계약서를 분실하였을 경우에는 더 심하게 자책할 것이다 .
계약서란 둘 사이에 정한 내용을 제3자도 알 수 있도록 글로 기록한 것이다. 여기서 제3자는 근로감독관이 될 수도 있고, 판사가 될 수도 있다. 결국 둘 사이에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 제3자에게 진정, 소송 등을 통해 판단을 요청하기 때문이다. 이 때 계약서가 없이 당사자간에 구두상 싸움을 계속할 때 제3자의 입장은 난처해지고, 진실을 말하는 일방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이제 세상은 점점 더 문서화 될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고 자조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명확한 사회가 되어간다고 받아들여 그 사회에 적응해가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근로계약은 근로자가 파는 노동력 또는 노무의 값어치를 확정짓고, 사업주가 제공하는 금전의 대상을 명확히 하는 법률행위이다. 여기에 여타 다른 근로조건이나 근무조건을 첨삭한다면 우리 노동시장의 다툼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현재 근로기준법은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에 근로자에게 임금의 구성항목·계산방법·지급방법에 관하여 서면으로 명시한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정하고 있고 여기에 추가로 소정근로시간, 휴일, 휴가에 관한 사항을 서면으로 명시하여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근로자의 요구가 있으면 그 근로자에게 교부하도록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어 오는 7월 1일부터 시행예정이다.
노동시장에서 상대적인 우위에 있는 사용자가 근로계약서 작성 문화를 선도해 법을 준수하는 동시에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상호협력의 노사문화를 만들어나가길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