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언] 한 송이 국화꽃의 의미
[제 언] 한 송이 국화꽃의 의미
  • 윤 여 헌 대전지방보훈청 홍보담당
  • 승인 2010.03.21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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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캄캄하니(東洋大勢思杳玄) 뜻 있는 사나이 어찌 편히 잠들겠는가(有志男兒豈安眠) 평화시국 못 이룸이 아직도 북받치는데(和局未成猶慷慨) 정략을 고치지 않으니 참으로 불쌍하다 (政?不改眞可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저항 내지 독립운동의 선방에서 조선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며 일제의 강압에 신음하던 우리 겨레에게 독립에 대한 용기와 신념을 심어준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가 의거 후 투옥된 여순감옥에서 남긴 자작시다.
안 의사는 일제가 자신들의 동아시아 점령을 동양평화론이라는 명목하에 합리화하는 논리를 일침을 가하며, 여순감옥에서의 5개월간 수감생활 중에 남긴 ‘동양평화론’을 통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자신의 행동이 단순한 살인이나 정치적 암살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신앙과 연결된 행위, 동양평화와 겨레를 위한 이타적인 행위임을 역설하고 자신의 궁극적 지향점을 밝혀주고자 한 것이다.
1909년 10월 26일 당시엔 러시아 땅이었던 하얼빈 역 플랫폼에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에게 3발을 명중시키며 숨지게 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거사 직후 현장에서 러시아 헌병에게 체포되었지만 전혀 저항하지 않고 권총을 플랫폼 바닥에 내던지고 러시아어로 ‘코레아 우라(대한국 만세)’라고 세차례나 당당하게 외쳤다. 그때 안중근 의사의 나이는 불과 30세였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울린 총성은 우리 2000만 한민족의 기개와 강력한 항일독립의지를 되살리는 동시에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민족적 의거의 신호탄이며 안 의사의 평화와 평등사상인 ‘동양평화론’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장에서 최후 발언 역시 동양평화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의 이 거사는 동양평화를 위하여 결행한 것이므로 임석 제원들도 앞으로 한·일화합(韓日和合)에 힘써 동양평화에 이바지하기 바란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엿 볼수 있는 대목으로 당시 상황으로는 실현 가능성이 미비했으나 유럽연합(EU) 구상보다 70년을 앞선 생각이라는 재평가를 받고 있다.
오는 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오전 10시 경복궁에서 중앙추념식이 열리며 그 외 안의사 사적지 탐방행사, 글짓기 대회, 국제학술회의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한편 대전지방보훈청에서는 3월 23일부터 29일까지 7일간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리고자 국립대전현충원 보훈미래관에 안중근 의사 봉안소를 별도 마련하여 안중근 의사 영정앞에 국화를 헌화하는 캠페인을 전개한다.
또한, 행사 당일 자율적인 성금 모금을 통한 수익금을 마련하여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 취지에 맞게 다문화가정 돕는 성금으로 쓰여질 예정이다.
안중근 의사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인류가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인 평등과 평화를 강조하며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의거도 궁극적 평화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실천했다.
이제는 우리가 그 정신을 이어받아 실천의지를 보여줄 차례이다. 가족, 친구, 직장동료 등과 함께 잠시나마 안중근 의사의 영정에 꽃 한송이를 바치며 추모하는 것 또한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안중근 의사를 비록한 많은 애국선열이 지켜낸 소중한 대한민국을 이제는 우리가 의무와 도리를 갖고 강하고 부유한 대한민국으로 지켜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나라사랑정신의 계승발전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진정한 대한국인으로 태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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