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새로운 의제를 찾을 때가 아니다
[데스크 칼럼] 새로운 의제를 찾을 때가 아니다
  • 강재규 기자
  • 승인 2007.07.05 1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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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참 빠르다. 참여정부가 출범한다고 요란을 떨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임기 5년에서 이제 7개월 남짓 남았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 참 몇몇 언론들과 각을 세우고 말 실수도 많이 하던 때로 기억한다. 노 대통령은 그때 “난 처음부터 레임덕이었다”며 농반 진반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의 말 대로 임기 초반부터 레임덕이었든 아니었든 시간은 흘렀다.
그의 표현대로 임기 종착점을 향해 한 발짝, 반 발짝 앞으로 가고 있다. 어떤 것들은 ‘노무현 아니면 못할 것’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많이 좋아진 것도 부인키 어렵다. 혁신과 규제개혁, 분권과 균형발전 등은 이 정부의 몇가지 대표적 키워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잦은 실기(失期)와 정책의 실패에 따른 민심이반은 한 때 국민적 지지도를 10%대로 곤두박질치게 하는 단초도 됐다. 집권당의 힘이 꼭 약해서일까? 아니다. 민주화 투쟁과정을 거친 386세대를 지지기반으로 탄생한 참여정부는 묘한 습성을 갖는다. 집권당의 힘이 약해 정책이 안 먹히고 그로인해 지지도가 땅에 떨어졌다는 말은 옳지 않는다.
도덕성 문제도 실은 이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보수야당의 ‘차떼기’에 비할 수 없다. 그럼에도 온갖 이념적 갈등과 분열을 양산한 정부로 기억될 처지에 놓이면서 역사의 평가를 기다려야 하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참여정부는 386세대를 주축으로 한 ‘민주투사’들을 전면배치하면서 출범했다. 그런데 참여정부는 울리히 벡이 지적한대로 적이 사라진 민주주의의 실상을 웅변으로 말해준다. 그간 싸움에 능했던 까닭에 출범부터 싸울 대상을 찾느라 허둥지둥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그들이 찾은 그 대상과 방법은 아이들 싸움판 공식처럼 분명했다.
대상으로는 반드시 또래 중에 제일 힘센 녀석을 고른다. 제일 힘센 놈을 이기면 그 이하는 싸울 필요가 없다. 취임초부터 보수언론과 잔뜩 각을 세웠던 것도, 총리가 서울시장을 향해 깐죽거린것도 정통부가 KT를 시장 지배사업자로 단정해 과태료를 부과한 것도 또 예전에 공정위가 삼성전자 위험론을 제기하며 재벌개혁을 촉구하고 나선 것도 같은 전략에 다름 아니다.
비교적 점잖은 교육인적자원부가 멈칫하자 당(黨)이 죄다 나서서 권력자의 서울대 책임론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면전 운운하며 서울대를 무차별 공격한 것도 같은 이치다.
다음은 방법. 많이 맞으며 자라온 탓에 일단 얻어 맞고서야 힘을 쓴다. 여론의 뭇매든, 언론의 질타든 맞고나야 힘을 발휘하는 속성이 그것이다. 이른바 역(逆) 데미지효과 이론이라고 할까.
어린아이들의 싸움판을 보라. 반드시 상대방에게 먼저 때리라고 요구(?)한다. 그러면 그게 나를 분기시켜 너를 패줄 테니까 하는 식이다. 어차피 일부 세력들도 자신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 판에 탄핵은 불감청 고소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어김없이 곧바로 이어진 총선에서 일약 과반정국을 이끌어냈다.
마지막으로 싸움의 논리와 이론적 배경은 의외로 단순하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하는 말 혼자만 먹지 말고 같이 나눠 먹자는 식이다. 그걸 어른 식으로 표현하면 균형과 평균의 법칙이다. 때문에 참여정부에게는 균형과 평균의 법칙을 벗어난 곳은 예외없이 공격의 대상일 뿐이다.
아담 스미드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잘 작동하면 더 없이 좋겠지만 그러지 않을 때는 케인즈식 간섭과 조정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삼성이 지배구조의 왜곡을 통해 시장을 교란했다는 공정위의 판단이나 혁신도시 정책 등을 통해 서울시를 자극하고 공격했던 것도 실상은 같은 논리였다.
말하자면 전국 생산성(生産性) 면에서 보면 독과점은 시장실패(market failure)고 시장실패는 참여정부에겐 타도의 대상일 뿐이란 얘기다. 그런데 시장실패를 빌미로 과거 정부보다 더 개입하고 통제함으로써 정부실패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최근 내신 반영비율을 놓고 몇 몇 대학들에게 눈을 부라리며 윽박지르더니 두손 바짝 들고 만 예가 그 하나다. 가만 놔두면 덜 시끄러운데, 건드리면 건드릴 수록 동티나는 꼴이다. 그러다 보니 백성들의 눈에는 온갖 정책들고 조직을 혁신으로 덧칠하긴 했으면서도 별반 한 것도 없고 안한 것도 없는 정부로 비춰지고, 비아냥을 듣는 결과를 낳아왔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역대 정권이 그랬듯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마지막 1년은 대개 레임덕으로 흐르게 돼 있다. 차기 정권을 쥘 대권 주자들에 의제를 빼앗기게 돼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의제를 찾으려고 할 게 아니라 있는 거나 잘 마무리해나가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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