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고]우리말을 바로 쓰자
[기 고]우리말을 바로 쓰자
  • 박홍길 동의대 명예교수·한글학회 이사
  • 승인 2011.12.08 20: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말은 곧 생각이다. 생각이 무너지면 말이 흐트러진다.
TV에서 쏟아 내는 말을 들어 보면,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어수선한가를 알 수 있다. 특히, 말을 생명으로 여겨야 할 방송인들의 생각이 심하게 어지러워져 있음을 느낀다. 언론인의 말씨 한 마디는 곧 민중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야구 결과를 해설하는 여자 방송인은 말끝마다 “내일은 잘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라고 한다. ‘바라는’ 일은 내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바라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요, ‘바라는’ 때는 이제임을 왜 모르는가?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다. 마이크를 입에 갖다 대면서 “한 말씀 해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노래 한 곡 불러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부탁 드리겠습니다.”를 연발한다. ‘바랍니다, 부탁 드립니다.’라야 말이 된다. ‘-겠-’의 쓰임도 모르는 방송인들, 도대체 현재와 미래도 구별 못하는 이런 방송인들이 우리말을 어지럽히는 주범들이다.
“너무너무 고맙습니다.”라고도 한다. ‘너무’라는 부사가 ‘넘다’ 어간에 ‘-우’ 접미사가 붙어 된 말임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넘치게’, ‘지나치게’의 뜻을 가진, 부정하는 말 앞에 쓰인다는 것쯤은 모두가 느낀다. “너무 높다(그래서 손이 닿지 않는다)”, “너무 작다(그래서 쓸모가 없다)”로 쓰이는 말임을 유치원 어린이도 다 안다. 그러니 “너무너무 고맙습니다.”는 곧 “고맙지 않다.”는 뜻의 비꼬는 말이요, “너무 예쁩니다.”는 “아주 못생겼습니다.”의 뜻임을 방송인들은 왜 모르는 것인가. ‘너무’를 ‘매우, 퍽, 참,…’ 등의 긍정 부사로 바꿔야 한다.
요리 강습 장면, 반드시 “이 음식 한 번 드셔 보세요”라고 한다. “들어 보세요”라 해야 한다. 서술어가 둘 이상 이어지면 맨 끝 말만 높여 주면 된다. 누가 “이 노래 한 번 부르셔 보세요”, “이 책 한 번 읽으셔 보세요”라 하던가. ‘들다’는 아직 ‘드시다’로 굳어진 말이 아니다. ‘-시-’가 붙은 ‘잡수시다, 주무시다’처럼 된 말이 아니라는 뜻이다.
어법에 어긋난 말씨가 거리에 넘친다. 방송에서 끼친 걷잡을 수 없는 영향 때문이다. 언론 문화를 책임지고 있는 장관은 이런 일들을 살피고 감독해야 한다.
요즘은 많이 고쳐졌으나, 아직도 “깜짝 놀랬습니다.”, ‘날으는 비행기’, ‘낯설은 타향’, ‘녹슬은 철조망’으로 잘못 쓰고 있다. 놀랐습니다, 나는, 낯선, 녹슨으로 해야 한다. 무심히 쓰는, 법에 어긋나는 이런 말씨는 의식적으로 노력하여 좀 고쳐 주었으면 좋겠다.
“기분 좋은 것 같아요”, “매우 슬픈 것 같아요”, 말끝마다 ‘같아요’다. 자기의 느낌 하나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는 젊은이들, 그 무대 등장인물들의 잘못된 말씨를 현장에서 고쳐 주는 일도 방송 진행자의 임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면 그만인 것을 “저는 이렇게 생각되어진다고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한다. 한없이 길게 늘어뜨리는 말, 극단적인 소극성이요 책임 회피의 말솜씨다. 방송은 시간 문화다. 간결하게 말하는 법도 익혀야 하고 대중들을 깨우쳐야 한다.
여러 신문사에도 간곡히 부탁한다. 맞춤법과 표준말은 거의 맞게 써지고 있다. 다만, 아직도 큼직큼직한 표제어는 띄어쓰기, 문장부호 사용법 등에서 더러 틀린다. 부디 외국어·외래어를 넘치게 쓰는 일, 결코 자랑이 될 수 없는, 우리의 혼을 죽이는 일임도 늘 염두에 새겨 주었으면 한다.
가을 하늘, 문화의 달 시월이 우리말을 아끼는 한글날이 있어 더욱 맑고 아름답게 꽃피었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