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신뢰 못주는 정부 존재가치 있나
[충일논단] 신뢰 못주는 정부 존재가치 있나
  • 한내국 부국장 편집국 정치행정팀
  • 승인 2012.07.04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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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무상보육확대를 추진했다가 돌연 선별추진으로 선회한 것과 관련 참으로 뻔뻔한 정부라는 쓴소리가 봇물처럼 일고 있다.
이는 당초 무상교육확대에 즈음해 정부 스스로가 ‘문제없다’고 했다가 재정난 등을 이유로 확정된 정책을 다시 뒤바꾸면서 벌어지는 소란이다.
이번 무상보육정책은 시행된 지불과 4개월만의 일로 재정부는 전면 지원에서 선별 지원으로 정책 방향을 완전히 돌리겠다고 했다.
무상보육이 전면 시행된 3월 이후 지방자치단체들은 줄곧 대책 마련을 요구해왔다. 7월 전후 대부분의 시·도에서 재정이 바닥날 것이라면서 가계부를 들이밀었다. 경고는 현실로 다가왔다.
현재 정부는 올해부터 만 5세 아동들에 대한 무상보육 정책 ‘누리과정’을 시행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3ㆍ4세까지도 확대 적용된다. 올해까지는 3ㆍ4세 유아들의 경우 소득 하위 70% 가정에만 지원되던 보육료를 내년부터는 전계층에 확대 실시키로 예정된 상황이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정부가 정책을 선회하고 있다. 김동연 기획재정부 2차관이 지난 3일 입바른 소리를 했다. “재벌가 손자에게까지 주는 보육비를 줄여 양육수당을 차상위 계층에 더 주는 게 사회정의에 맞다.”는 말이다. 이는 전면지원에서 선별지원을 하는 이유다.
앞서 정부가 확정한 발표안은 그러나 ‘정치권에서 수혜자를 소득 하위 70%에서 100%로 늘린 탓에 지방정부 측과 협의가 안 됐다’고 실토했다. 정치권의 주장에 따라 무리하게 정책이 확정됐다는 얘기다.
이는 시행한지 불과 반년만에 재정여력이 취약한 몇몇 지자체들이 ‘더 이상 영유아 보육비 지원 사업은 유지 못하겠다’며 정부의 추가 지원을 요구했고 자금이 고갈된 한계점을 인식하자 이번엔 정책축소를 해야만 하게 된 것이다.
정부가 밝히대로 돈도 부족하고 사회정의에도 안맞는다는 얘기인데 지난해 정부가 말한 입장과는 너무 상반된다.
지난해 박재완 기재부 장관은 한창 사회적 이슈였던 무상급식과 관련 “우리 후손들이 ‘공짜 점심’의 대가를 치르지 않도록 재정 건전성 복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가 국정 감사장에서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정면대응한 소신발언으로 정부 내에서는 지지를 얻은 바 있다.
하지만 이후 불과 몇 달 사이 그보다 5~10배 더 많은 재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무상보육 프로젝트 누리과정을 발표했다. 당시 정부 관계자들은 ‘균형재정을 이루면서 무상보육을 실시하겠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기자들의 지적에 “MB 정부에서 보육은 책임지겠다는 정책 방향과 같이 하기 때문에 문제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이 말이 실현가능성이 없음이 드러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당장 하반기 내수 활력을 위해 4조원 이상의 재정을 기금 형태로 추가로 투입하기로 돼 있어 지자체에 지원할 자금여력이 없는 상태다.
정치권의 상황에 맞춰 입장을 바꾸는 모양새에 국민과 지자체의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이것이 정권 말기의 레임덕과 연결된다면 그 후유증은 더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정치권의 입김에 움직이는 정부라면 이는 존재감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당연히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쳤으며 정치권의 입맛에 휘둘렸다면 정부가 이미 정부지위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춘추시대 초(楚)나라 사람이 쓴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갈천자( 冠子) 천칙(天則)편에는 이런 사연을 수록하고 있다.
옛날 초나라 땅에 가난한 한 서생(書生)이 있었다. 그는 회남자(淮南子)를 읽고 사마귀 벌레가 매미를 잡을 때 나뭇잎에 몸을 숨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 나무를 찾아 잎사귀를 모조리 따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 나뭇잎으로 자신의 눈을 가린채 아내에게 자기의 모습이 보이는지 물어보았다. 처음 그의 아내는 다 보인다고 대답하였으나 남편이 계속 이렇게 눈을 가리고 다니자 어찌나 보기 싫었던지 그만 보이지 않는다고 말해 버렸다.
아내의 말에 자신감이 생긴 서생은 잎사귀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길거리로 나갔다. 그는 사람들의 물건을 훔치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그는 자신을 심문하는 관리에게 나뭇잎으로 눈을 가렸기 때문에, 당신의 눈에는 내가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리로부터 미친놈 대접을 받았다.
국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에 미혹되어 총체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를 깨닫지 못함(一葉障目)을 비유하는 일화다.
명분도 가치관문제라는 점에서 앞뒤 안맞는 명분은 오히려 안하느니 못한 것이다. 당연한 말을 ‘소신’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정부라면 이는 몹시도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발상이 결국 나라 망치는 발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세종시 추진을 놓고 벌인 우리 정부의 해괴망측한 반대운동을 눈물겹게 보아 온 국민이 더 이상 우리 정부를 다른나라 정부로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정부 스스로의 노력과 열정을 국민에게 보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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