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甲의 사과에 오너는 보이지 않는다
[충일논단] 甲의 사과에 오너는 보이지 않는다
  • 박해용 부국장 편집국 경제행정팀
  • 승인 2013.05.30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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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甲)의 횡포’ 논란을 일으킨 기업들이 잇따라 국민앞에 머리를 숙였지만 정작 사과 기자회견장에 오너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진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조직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갑의 횡포에 대한 근절요구가 거세다.
가맹점주의 잇따른 자살과 회사측의 자살 점주 사망 진단서 변조 논란에 휩싸인 BGF리테일은 마침내 대국민 사과문과 상생경영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가맹 계약 관행 개선 등을 포함한 대책을 마련해 경영난에 처한 점주들을 사지로 내몰지 않겠다는 것이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이 내놓은 재발방지책이다.
그러나 회견장에 오너인 홍석조 회장이 빠지고 박재구 사장이 나서 진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밀어내기’(강매) 등으로 사회적 파문을 야기했던 남양유업이 지난 9일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오너인 홍원식 회장 대신 김웅 대표이사가 나왔던 것과 같은 양상이다.
당시 남양은 비난 여론이 불매운동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사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점주의 잇따른 자살에도 꿈쩍 않던 BGF리테일도 사망진단서 변조 논란이 불거지고 피해 점주들이 홍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문제가 확산되자 뒤늦게 회견을 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전국편의점가맹점주협의회 방경수 대표는 “불공정 관행을 통해 재산을 축적한 오너가 정작 문제가 불거졌을 때 자신의 책임을 경영진에 떠넘기는 걸 보면, 사과를 했다고는 하나 그것이 진정성 없는 형식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홍 회장은 2007년 취임 이후 작년까지 200억원이 넘는 배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따르면 홍 회장이 취임한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이 회사의 배당률은 30%였고, 2010년부터는 배당률이 50%까지 올렸다. 액면가 5000원인 주식 1주당 2500원을 배당금으로 지급한 것이다.
홍 회장의 회사 지분율은 34.93%다. 따라서 총배당액이 71∼78억원이었던 2007∼2009년에는 해마다 25∼27억원을 배당으로 받았다.
또 연간 총 배당액이 119∼123억원으로 늘어난 2010년 이후에는 연간 41∼43억원의 배당을 받았다. 취임 이후 지금까지 홍 회장이 가져간 배당금은 대략 200억원이 넘는다.
거액을 벌어들인 건 그들이 우려먹은 가맹점들이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번 사망과 관련 된 기업 누구도 책임에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과하는 자리에 오너가 없다.
이는 국민감정에 또 다른 상처를 입히는 행위와 같다. 그 다음의 잘못은 정부에 있다.
유통업계를 관리감독하는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 때문이다. 소수의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지키지 않았고 갑의 횡포를 막아야 하는 책임도 해내지 못한 잘못이다.
국회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관련 입법을 서두르는 모양이다. 이번처럼 갑의 횡포가 만연하다고 판단한 탓이 크다.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갑을 행태’는 비단 ‘라면 상무’, ‘제빵 회장’, ‘남양유업 사태’와 같은 기업의 문제만이 아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무원도 예외가 아니다. 공복(公僕)으로서 응당 국민에 봉사해야 할 공무원이 되레 ‘갑(甲)’으로 군림하며 횡포를 부리는 일이 허다하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공직자 행동강령 사례집 2013’은 공직자의 일그러진 ‘슈퍼 갑’ 행태를 여실히 보여주는 고백록이나 같다.
수법은 다양하고 교묘하다. 한 중앙행정기관 부이사관은 산하 단체로부터 법인카드를 받아 사적으로 쓰면서 수시로 골프 접대도 받았다. 모 광역자치단체 간부는 ‘해외 선진사례 연구’를 핑계로 민간 업체에 동남아 관광여행에 술 접대까지 요구했다.
업체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딸의 결혼식 청첩장을 돌린 것도 모자라 불참한 업체에도 알려 달라고 한 몰염치한 기관장도 있다. 직원 체육대회를 열면서 업무 관련 업체에 경품 협찬을 요구하는 등의 사례는 비일비재했다. 오죽했으면 권익위가 사례집을 발표하면서 ‘공직자 갑의 횡포, 이제 그만’이라고 제목을 달았을까.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의 부패 척결 의지에 과연 진정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는 공직 사회에 관행처럼 퍼져 있는 ‘갑의 횡포’를 찾아내 자정 운동을 벌여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민간기업과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이같은 형평성을 어기는 분야에 대한 총체적 재점검과 함께 강력한 개선노력도 함께 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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