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승용 칼럼] 정당공천제 폐지와 헌법정신
[엄승용 칼럼] 정당공천제 폐지와 헌법정신
  • 엄승용 사단법인 문화자원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13.07.09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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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양당이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의원 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방선거 공천권 폐지가 위헌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즉, 복수정당과 정당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헌법정신에 위배되고, 다원적 민주주의가 정당에 의해 실현되어야 하는 정치과정을 무시하며, 심지어는 다른 선거에서는 정당공천을 인정하면서 유독 지방선거에서만 정당공천을 폐지하여 평등원칙에도 어긋난다는 등의 논리이다.
이러한 의견은 지방정치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였거나 정당 민주주의의 본질을 외면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정당공천제 폐지는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공천제에 따른 지방정치의 문제점을 치유하여 결국 헌법상의 정당민주주의 이념을 더욱 고양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정당의 지역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특정 지역의 지배적 정당에서 공천 받은 후보가 개인적인 자질을 떠나서 무조건 당선되는 경향이 있다. 지방선거가 지역의 살림살이를 잘 할 수 있는 일꾼을 선택하는 과정이 아니라 중앙정치의 대리전 양상이 된다.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당내 공천경쟁이 과열된다. 당원들은 비민주적인 정당구조에 순응해야 하고 정의롭지 못한 관행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당론’에 거역하지 못하고 전투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는 현상도 나타난다. 정당의 민주적 운영에 관한 헌법 제8조 2항의 취지가 잊혀져가고 있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현대 사회의 변화는 정당의 혁신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더욱 다원화되고 있는 사회, 더욱 복잡해지고 있는 이해관계 등 사회변화 속에서 시민들은 기존 개념의 정당기능에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보다 유연하고 고도로 전문화된 정치통합 조직이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정당정치의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지방정치에 개입함으로써 문제가 가중된다. 생활정치가 중심이 되어야 할 지방정치에서 지역주민의 삶보다 중앙정당 지도부의 의중이 중요시 된다면, 또는 단체장이 시급한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기초단체의회 의원들이 발목을 잡는 현상이 초래된다면, 특히 고령화, 다문화 등 급격히 사회구조가 변화하는 지방도시와 농어촌 지역에서 정치적 노선에 따라 사회균열이 깊어진다면, 정당이 사회통합과 정치적 대변자의 역할을 못하는 것이다. 정당은 지방분권을 주장하면서 거꾸로 중앙집권적으로 정당을 운영하고 있어 지역사회를 이끌어갈 능력있는 정치 엘리트를 충원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정당의 기본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었고 정당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불거지게 되었다.
정당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중앙정당이 지방정치에 개입함으로써 지방정치의 비용을 증가시키고 사회적 분열을 가중시키는 결과가 초래되어 결국 유권자들이 정당을 불신하는 현상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여러 정치 지망생들이 자유롭게 정당에 가입할 수 있고, 지지하는 정당을 표명하며, 정치적 이념을 함께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연대하도록 허용한다면 헌법상의 정당정치 이념을 깨지 않는다. 정당에 줄을 대고 정치적 보스에게 복종해야 하는 관행 때문에 정치에 발을 들이지 못했던 좋은 인재들, 즉 지역사회에서 존경받고 전문성을 갖춘 지도자들이 지방정치에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중앙집권적 정당정치에 가로막혀 있던 지역공동체가 살아날 것이다. 정당의 색깔 때문에 갈라섰던 학교동문과 종친들이 다시 손을 잡을 것이다. 그동안 전국적, 집단적, 하향적 동원정치에 의존했던 정당이 새롭게 거듭날 것이다. 새로운 사회변화에 부합하는 유연한 시스템을 도입하고 지방의 유능한 정치지도자들과 대등한 파트너십을 이룰 것이다. 그래서 헌법상의 정당민주주의 정신이 더욱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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