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010번호통합과 三人成虎(삼인성호)
[충일논단] 010번호통합과 三人成虎(삼인성호)
  • 박해용 부국장 편집국 경제행정팀
  • 승인 2013.07.2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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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X’ 번호를 ‘010’으로 강제 통합하는 것이 위헌이라며 청구한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각하 혹은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그동안 사정상 번호이동을 미루어야 했던 144만명의 가입자들이 정부의 안내에 따른 번호이동을 해야하게 됐다.
하지만 헌재가 이런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기존 가입자들이 더 이상 법률적으로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동안의 사정을 이유로 번호이동을 거부했던 명분이 사라져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
‘01X’ 번호를 고집하면서 010으로 이동을 거부해 왔던 사용자들의 면면을 들어보면 모두가 그럴 수밖에 없는 사유가 있다. 혹자는 오랫동안 유지됐던 사업상 거래관계가 깨져 매출급락을 걱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어떤 경우에는 행발불명된 자녀가 기억하는 번호라 하여 목숩을 버릴지언정 이 번호를 버릴 수 없다는 사정도 있다.
이들의 절박한 사정에 견주면 생업과 생명을 바꿀 수 없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더우기 정부가 01X번호 사용을 사실상 허가했고 이제 와서 010번호로 강제한다는 것도 무리다. 이를 반발해 기존 사용자들이 헌재를 상대로 강제통합을 반대하는 헌법소원을 낸 모양이다. 그 결과 헌재가 이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으니 당연 정부는 강제로라도 010사용으로 전환이 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헌재의 결정이 납득을 하지 못하는 국민들이 많다. 곡절한 사연이나 합당한 이유가 있더라도 도의적 책임까지 무시한다는 것이 너무 심하다는 것이다.
그런 연유를 의식했던 것인지 정부는 기존 ‘01X’ 가입자가 번호를 ‘010’으로 이동할 경우 기존 번호를 무료로 3년 동안 안내하는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새로운 주파수대로 이동하면서 기존 장비를 운영하는데 비효율성을 메꾸기 위한 정부지원금을 절약하는 등 효율성 측면에서 보자면 정부가 헌재결론을 이유로 빠른 이동정책을 추진할 것임은 자명하다.
‘01X 한시적 번호이동 제도’는 정부가 휴대전화 번호 앞자리를 ‘010’으로 통합하기로 하면서 스마트폰 보급을 활성화하고자 한시적으로 3G·LTE 가입자의 기존 ‘01X’ 번호 사용을 허가한 것으로, 올해 말까지가 시행 기간이다.
미래부는 01X 번호로 3G나 LTE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입자들은 내년 1월 1일부터 3G·LTE 서비스 가입 당시 미리 부여받은 010 번호만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가입자들은 이동통신사의 대리점이나 홈페이지에서 01X 번호를 010 번호로 바꿔야 한다. 만약 010으로 번호를 변경하지 않으면 내년부터 자동으로 번호가 010으로 바뀐다.
현재 01X 번호로 3G나 LTE를 이용하는 가입자는 SK텔레콤 94만명, KT 38만명, LG유플러스 12만명 등 144만명에 이른다.
단 01X 번호를 사용자더라도 2G 서비스를 이용하는 272만명은 현재 번호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이용자들이 정부의 ‘010 번호 통합’ 계획에 반발하는 것은 오랜 기간 자신의 고유번호처럼 사용되던 휴대전화 번호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원고들은 “번호통합계획은 헌법상의 행복추구권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전국책(戰國策) 위책(魏策)에는 위나라 혜왕(惠王)과 그의 대신 방총이 나눈 대화가 실려 있다. 방총은 태자를 수행하고 조(趙)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없는 사이에 자신을 중상하는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을 우려하여, 위 혜왕에게 몇 마디 아뢰게 된다.
“만약 어떤 이가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위 혜왕은 “그걸 누가 믿겠는가”라고 하였다.
방총이 다시 “다른 사람이 또 와서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왕은 “그렇다면 반신반의하게 될 것이네”라고 대답하였다.
다시 방총이 “세 사람째 와서 똑같은 말을 한다면 왕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라고 하자 왕은 곧 “과인은 그것을 믿겠네”라고 하였다. 이에 방총은 “시장에 호랑이가 없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한다면 호랑이가 나타난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三人言而成虎)”라고 말했다.
헌재의 결정으로 미래창조과학부의 010 번호 통합 계획은 예정대로 차질없이 진행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자녀의 행방불명을 이유로 번호거절을 하는 절박함에 놓인 ‘01X’ 번호사용자를 강제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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