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섣달 그믐 그 시린 별 빛
[기고] 섣달 그믐 그 시린 별 빛
  • 권광식 성환초등학교 교사
  • 승인 2013.12.22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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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미국 백인 주류 사회 구성원들이 가장 사랑하는 주요 언론 매체인 뉴욕타임즈 전면에 ‘아시아인들은 생각할 줄 모른다’라는 전면 기사가 1999년경에 실렸습니다. 아시아인들은 정해진 정답을 ‘Find’ 할 뿐 ‘Reserch’할 줄 모른다고 비아냥거리는 기사를 1면에 전면으로 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또 이런 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수능격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대학입학시험 ‘바칼로레아’에서는 문제가 ‘우리는 욕망을 해방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욕망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하는가?’라는 정도의 문제가 출제되고 있다고 하네요.
그런가 하면 2014학년도 대한민국의 수능은 세계지리 과목 8번 객관식 문제의 정답 오류 사건으로 법원 판결을 받았습니다. 재판부의 판결 이유는 “틀린 사실도 교과서라면 옳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천동설이 진리이었던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진리가 꼭 진실은 아니고 진실일 필요도 없다는 논리이겠지요.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평가에 PISA라는 시험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언제나 최상위권을 차지합니다. 교육부에서는 큰 치적처럼 이야기 하곤 합니다. 주 40시간 이상 별도의 공부를 하는 아이들과 8시간도 하지 않는 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얻은 성취로 자만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 결과 학업성취면에서는 최우수지만 학습효율면과 학습만족도에서는 언제나 최하위를 차지하는 것이 2013년 대한민국 교육의 맨얼굴입니다. 이런 사회적인 작태를 보면서, 이래서 우리는 서구인들에게 정답이 있는 것을 찾는 능력만 있을 뿐 연구하고 생각할 줄 모른다는 비아냥거림을 듣게 되는 것이리라는 참담한 열패감에 빠지곤 합니다.
그런데 알고 계십니까? 조선 반만년 역사를 통해 유일하게 왕의 호칭을 받지 못했던 두 임금, 사후 대군의 호칭으로 불리웠던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인 광해군, 그 암울했다는 임금 광해가 직접 내린 과거시험의 제목 즉 책문이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였다네요.
이렇듯 우리 선조들은 과거 시험의 마지막 관문인 책시의 문제뿐만 아니라 대부분 고사에서 주로 삶 그 자체에 대한 문제를 물었다고 합니다. 정답이 없는 삶의 문제에 최선의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문학과 역사와 철학이 두루 인용되어야 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출제 경향에 놀라울 뿐입니다. 물론 사가들의 편향된 시각 탓도 있겠지만 암군중의 암군이라는 광해가 이 정도였는데 다른 임금들의 책문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되지 않으십니까?
참 그런 선조들 앞에 오늘을 사는 교육자로서 부끄럽고 염치가 없어집니다. 우리의 DNA속에는 이미 지식, 이해, 적용 등의 저차원적인 인지 작용이 아니라 고차원 적인 사고인 분석, 종합, 평가하는 능력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시대 사회상이 그래서 이 DNA를 제대로 발현시키지 못했을 뿐이지요. 이런 선조들의 기풍을 되살릴 수 만 있다면 수능결과 발표에 미처 피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들이 참담하게 꺾여버리는 교육현장 바뀔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선생님들 섣달그믐이 다가오네요. “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라는 임금 광해의 우문에 스스로 현답을 리서치해 보시는 귀한 시간 가지시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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