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그녀 앞에서 무슨말을 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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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전도연… 처절하고 외롭게, 온몸으로 표현
  • 뉴시스
  • 승인 2013.12.2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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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전도연(40)은 말 사이사이에 눈을 껌뻑였다. 가끔은 천장 쪽으로 눈동자를 올리며 먼 곳을 바라봤다. 눈물을 삼키려 애썼지만, 목소리의 떨림은 숨겨지지 않았다. “촬영하는 동안 정말 집으로 가고 싶었습니다.”는 그녀의 말에서 영화 ‘집으로 가는 길’(감독 방은진)의 고됨이 느껴졌다.
영화는 2004년 10월 30일 프랑스 오를리 국제공항에서 한국인 주부가 마약 운반범으로 검거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3개월 남짓한 촬영 기간이었지만 전도연은 ‘정연’을 맡아 실제 주인공이 받은 756일 간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길 자처했다. “그녀의 힘겨운 시간을 허투루 연기하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이다. 처절하고 외롭게, 감정의 깊이를 바닥까지 끌고 갔다.
영화 속 주인공은 파리 구치소에서 3개월, 마르티니크 교도소에서 1년, 가석방 생활로 9개월을 보냈다. 한국에서 비행기로 22시간, 대서양 건너 1만2400㎞ 떨어진 낯선 곳에서의 생활이다. 먹을 것이 없어 말라갔으며 국가의 외면 속에서도 견뎌야 했다. 여자 교도관에게 겁탈당하는 장면도 방 감독의 철저한 검증을 거친 실제 사건이다.
전도연은 “촬영하는 동안 내 가족을 생각할 수 없었다.”며 “조금이라도 놓치고 가면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엄마가 필요한 시기인 내 딸과 가족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촬영장까지 끌고 오기에는 내가 여유롭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느낀 화난 감정, 답답함, 슬픔, 그리움을 담아야 했다. ‘소통되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끔찍했을까’라는 생각을 표현해야 했다. 시간적으로도 쫓기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극도로 예민해지다 보니 생전 처음 급체도 해봤다.”고 밝혔다.
감정은 법정신에서 터져버렸다. 판사를 향해 “아내를 잃은 제 남편, 엄마 없이 자라야 했던 제 딸, 이제는 돌아가서 제 죄를 갚고 싶습니다.”고 말할 때다. 촬영을 마친 전도연은 감정이 격해져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연기하는데 내가 너무 떨렸다. 또 사람들이 나에게 집중하는 모습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촬영을 끝내고 나오는데 몸과 마음이 탈진상태였다. 그때 극중에서 날 겁탈하려 했던 그 친구가 ‘힘들지? 잘하고 있어. 넌 정말 좋은 배우야’라고 말해줬다.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촬영을 다 마치고 나서야 실제 사건을 겪은분을 마주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너는 내 운명’ 때에 이어 두 번째 실화를 연기했다. 하지만 연기적인 호기심으로 그분들을 만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아직 떳떳이 나설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큰 분인데 내가 궁금증을 갖기가 조심스러웠다. 또 상처를 끄집어내는 게 아니라 ‘치유’하려는 영화기 때문에 ‘괜찮으세요? 힘드셨죠’라고 말할 수 없었다.”는 마음이다.
“도미니카에서 짧은 시간 동안 경험을 하고 나서야 만났다. 너무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나에게는 3주였지만 그녀에게는 2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그래도 지금은 ‘힘드셨죠?’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VIP 시사회 때 처음 마주했는데 오히려 나에게 ‘힘드셨죠? 고생하셨어요’라고 위로해줬다. 내가 했어야 하는 말을 들으니 딱히 할 말이 없더라. 그저 ‘창피한 일이 아니에요. 상처받지 않아도 돼요’라고 해줬다. 하지만 그녀의 말이 나를 위로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과연 전도연이었다. 개봉하자마자 ‘전도연 찬가’가 따라붙었다. ‘카운트다운’ 이후 2년의 공백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연기를 잘한다는 말은 익숙하면서도 계속 들으면 좋아진다.”며 웃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부담감이 있다. 연기라는 게 ‘더’가 없는데 사람들은 나에게 ‘더 잘하는’ 연기를 기대한다. ‘전도연이 어떻게 연기하나’하는 시선도 느낀다. 하지만 작품과 캐릭터가 좋아서 모든 게 좋아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전했다.
“숨겨둔 제2의 필살기는 없다”는 전도연은 이병헌·김고은과 함께 영화 ‘협녀: 칼의 기억’을 준비 중이다. “작품이나 관객 시선은 부담스럽지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게요. 진심을 담아 소화하면 또 다른 전도연이 보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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