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짙은, 문학 이어 인문학 노래하다… ‘디아스포라, 흩어진 사람들’
가수 짙은, 문학 이어 인문학 노래하다… ‘디아스포라, 흩어진 사람들’
  • 뉴시스
  • 승인 2014.03.1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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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디셈버’ ‘고래’….
모던록 싱어송라이터 짙은(34·성용욱)은 하나의 수식이 됐다. 서정성 깊은 멜로디와 세심하고 문학적인 노랫말을 가리키는 꾸밈이다.
짙은은 그러나 2년4개월 만인 19일 매니지먼트사 파스텔뮤직을 통해 내놓은 새 EP 앨범 ‘디아스포라, 흩어진 사람들’로 “그 같은 편견을 깨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고 말했다.
“팬들이 제 음악에 대해 그런 기대를 많이 해요. 제가 커피를 지금 마시고 있다면, 잔을 잡는 손의 모양과 커피가 잔에서 일렁거리는 모습, 거기서 나오는 향기 등 디테일을 기대하죠. 그렇게만 소비되는 것이 싫다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있었죠”
EBS 라디오 문학프로그램 ‘단편소설’ DJ를 2년 간 맡기도 한 그는 그래서 “문학적인 표현 대신 인문학적인 표현, 가사도 은유와 비유 대신 개념과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문학 DJ를 맡아 디테일하고 소소한 것을 다루면서 감정 소모가 심해지더라고요. 이번에는 단단한 음악을 하고 싶었습니다.”
‘디아스포라, 흩어진 사람들’은 짙은의 이 같은 변화가 실제로 많이 투영된 앨범이다. 전작에 비해 노랫말은 진지해졌고, 사운드 역시 웅장함과 함께 진중함 그리고 투박함을 머금었다. 타이틀곡 ‘트라이’는 특히 광야에 홀로 남겨진 남성의 고뇌를 닮았다.
총 5곡이 실린 이번 앨범은 타이틀에서 엿볼 수 있듯 정치적, 경제적, 정서적 이유로 정착하지 못한 채 이곳 저곳으로 흩어진 사람들을 노래했다.
‘디아스포라’는 강제 이주자나 망명생활을 하던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짙은은 급변하는 시대에 몸은 이 곳에 있지만 마음은 부유하고, 마음은 그 곳에 있으나 몸은 정착하지 못한 현대인들을 앨범에 그렸다.
“최근에 정처 없이 떠도는 떠돌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변 분들도 다 그렇게 느끼고 있더라고요. 거창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런 감정들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곡을 만들 때 심상을 중요시 하는 짙은의 곡들에서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곡들이 모이면 자연스런 하나의 서사가 된다. 이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제목과 내용에서 최인훈의 ‘광장’이 연상되는 장엄한 현악기 사운드의 첫 트랙 ‘망명’으로 광야 생활의 여정은 출발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 출신 정연승이 편곡한 이 곡은 첼로와 바이올린, 비올라 등 현악기의 묵직한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차갑게 얼어붙은 땅 위에서 발을 붙이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묘사했다.
“선언적인 의미가 강한 곡이죠. 제가 그린 전체적인 이야기에서 밀려나거나 떠밀리거나, 추방당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죠. 신념이라는 것을 인정 받지 못한 것에 선언을 하는 거죠”
2번째 트랙 ‘안개’는 어쿠스틱 기타와 함께 하는 낭만적인 도피다. “예전 한국 소설을 보면, 인정 받지 못하는 상황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도망 가는 모습이 많이 그려지죠. 비참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한편으로는 낭만적일 수도 있거든요. 선율을 통해서 그런 부분을 노래하고 싶었어요”
타이틀곡 ‘트라이’는 안개를 헤치고 망명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보내는 ‘항해의 출정가’ 같은 곡이다. “간주에 스트링과 브라스가 들어가는 데 출항할 때 느낌으로 만들었어요. 본래 이 곡의 가이드 제목이 ‘절름발이 진군가’였어요. 절름발이가 발을 질질 끌면서 추방당하는 모습이랄까요. 그들을 위로하는 느낌의 곡이죠. 함께 떼창할 수 있는 곡이요”
상처 입은 이의 상념을 담은 록발라드 ‘해바라기’, 미로 속에서 밝은 빛을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인 ‘히어로(Hero)’ 역시 디아스포라와 맥락이 이어진다.
앨범은 대중음악에서 통용되는 ‘흥행 공식’을 되도록이면 잊고 만들었다. “노래를 만들 때 완결적이어야 하고 꽂히는 후크가 있어야하고, 1분 안에 후렴구로 넘어가야 하고 등의 흥행 법칙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걸 감안하는 대신 곡의 특성에 맞게 독창적으로 만들고자 했어요. 과거의 짙은이 아닌 성용욱으로서 할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었죠”
이 앨범은 새로운 프로젝트 ‘디아스포라’ 연작 시리즈의 신호탄이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못 했어요. 더 풀어내고 싶은 이야기가 남았어요. 한 번 더가 될 수도 있고, 두 번 더가 될 수도 있죠”
앞서 짙은이 2011년 발매한 앨범 ‘백야’ 수록곡인 ‘고래’가 KBS 2TV 드라마 ‘태양은 가득히’에 삽입돼 새삼 주목 받고 있다. 2008년 데뷔한 짙은은 어느새 ‘시간을 견디는 노래’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아직 신인의 마음 같아요. 여전히 중고 신인 같죠. 어둠 속에서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다크호스라고 할까요. 그 느낌이 좋네요. 뭔가 꽃피지 않은 느낌인데 저는 그런 게 좋아요. 다만 오래 노래했으면 해요. 30년 후에 아빠가 아들에게 한 때 '짙은'이라는 가수가 있다고 말하면, 아들이 그 가수 아직 활동하고 있다고 답할 수 있는 뮤지션이요. 하하하” 짙은의 항해는 이제 ‘트라이’다.
한편, 짙은은 4월 5일 오후 7시 서울 건국대 새천년홀에서 싱어송라이터 루시아와 합동 콘서트를 연다. 5월 중에는 단독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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