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복의 孝칼럼] 윤리의 객관화
[최기복의 孝칼럼] 윤리의 객관화
  • 최기복 대전하나평생교육원장·성산 효대학원 교수
  • 승인 2015.02.26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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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면 로맨스, 당신이 하면 불륜이다.
남의 딸이 애인이 많으면 행실이 가벼워서이고 내 딸이 애인이 많은 이유는 인기가 좋아서이다.
남이 학교를 자주 찾는 이유는 치맛 바람이고 내가 학교를 자주 찾아가는 것은 높은 교육열 때문이다.
며느리에게는 시집왔으니 시댁 풍속을 따라야 한다. 딸에게는 시집가더라도 네 생활을 가져라.
며느리가 친정 부모님에게 주는 용돈은 남편 몰래 빼돌린 돈이고 딸이 친정부모에게 주는 용돈은 길러준 데 대한 보답이다.
며느리는 남편에게 쥐어 살아야 하고 내 딸은 남편을 휘어잡고 살아야 한다.
남의 아들이 상을 받으면 누구에게나 주는 상, 내 아들이 상을 받으면 실력이 뛰어난 탓이다.
남의 자식 관대하게 키우면 문제아 만드는 일이고 내 자식 관대하게 키우는 것은 기를 살려 주는 일이다.
며느리가 부부 싸움을 하면 아내가 참아야 하고 딸이 부부 싸움을 하면 따질건 따져야 한다.
남이 내 아이를 나무라면 이성을 잃은 행위이고, 내가 남의 아이를 꾸짖는 것은 어른된 도리를 하는 것이다.
윤리란 사람이 사는 이치를 말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우리는 자명한 대답을 두고도 자못 망설인다. 보편화 된 일상의 도리를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과 처신을 생각해 보는 계기이기도 하다. 위에 예를 들어 봤다.
아전인수(我田引水)식 주장에 아연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과 주변의 현실을 둘러 보자.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진 사고(思考)가 오늘날 세상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가. 가족 간의 분쟁은 천륜이라는 부모와 자식이 견원지간이 된다. 이웃 간의 불화는 또 어떠한가.
학부모 회의에서 학부모 상호 간에 발생 하는 불화, 선생님과 학부모 간의 불화는 어떠한가?
아이를 둔 부모가 되어 진정 자식 사랑을 제대로 할 량이면 항상 회초리를 가까이 두고 살아야 하는 것이어늘 과보호의 우물 속에 가두어 두고 언행의 불일치 속에 인성을 마비시키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
사회저변에 자리잡고 있는 윤리의식의 기준이 객관성을 상실함으로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는 심각하다.
대안은 없다. 그 대안을 고민하지도 않는다.
특히 사법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 식구 감싸기는 눈뜨고 볼 수 없는 유치의 극치이고 객관적 윤리감각을 상실한 처사들로 국민의 법 감정에 상처를 주는 일이다.
소설가 김훈선생은 검찰을 어떻게 보는냐는 질문에 ‘국민의 혐오 대상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치부 되어야 할 것 같다. 이런 나라에 미래가 있을까. 국민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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