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시평] 5만 원권, 언제 떳떳하게 유통될까?
[충남시평] 5만 원권, 언제 떳떳하게 유통될까?
  • 김법혜 스님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중앙상임위원
  • 승인 2015.04.20 1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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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에서 물물교환시대는 조개껍데기, 곡물, 베 등을 물품화폐로 사용하다가 그 후 금, 은, 동 등을 화폐로 주조돼 사용된 것으로 추측된다.
물물교환 내지 물품화폐가 유통을 지배하던 시기에 우리나라는 중국으로부터 여러 종류의 화폐가 한반도로 흘러들어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때문에 물물교환 시대에는 교환할 상품이 화폐의 기능을 발휘했다. 그래서 서로가 필요로 하는 상대방을 찾아야 했고 바꾸려는 상품의 가치에 대해서도 서로 동의해야만 물물교환이 이뤄졌다. 우리나라 등 농업국가는 곡식과 가축을 화폐대신 사용해 다소 편리한 교역이 이뤄졌으나 단점은 무거워 불편이 뒤따랐다고 한다.
그 때부터 금, 은, 동 등 귀금속이 화폐로 사용됐다. 금과 은은 상대적으로 객관적 가치가 사회에서 공유되고 보관하기가 쉽고 이동도 편리해서 세계적으로 오랫동안 화폐 대용품으로 이용돼 왔다.
특히 지식계층과 사회적 주류층에서 금이나 은 혹은 어떤 상품을 맡기고 일종의 교환증서를 교역으로도 사용했다.
그 후 상인들이 발행한 전표를 물물거래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전표는 국가가 아무런 보장도 하지 않는 종이에 불과했지만 실제 교역에서는 마치 현금과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 지금도 무역의 신용장 등은 중세의 전표와 같은 방법을 사용하며 다른 경우에도 과거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다.
우리나라는 1600년대에 들어 국가가 그 가치를 보장하는 화폐를 등장시켰다. 처음에는 금과 은 혹은 동을 사용해서 그 금속 가치만큼의 동전을 만들었다. 그 후 동전을 통한 화폐정책이 국가가 보증하는 화폐가치 정책으로 전환됐고 뒤이어 인쇄기술의 발달로 동전 시대를 넘어 지폐 시대로 들어섰다.
하지만 지금은 카드시대로 발돋움돼 주머니에 거추장스러운 지폐와 무거운 동전이 없어도 불편을 느끼지 않는 시대로 바뀌어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1원 또는 5원짜리 동전을 본 일이 없을 정도가 됐다. 또 얄팍해진 10원짜리 동전도 생소하다. 알고 보니 한국은행이 2006년부터 1원과 5원짜리 동전 발행을 이미 중단시켰다.
그리고 10원짜리 동전은 크기를 1원짜리처럼 줄여 유통되고 있다. 신용카드 탓에 이런 변화에 둔감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국고금 수납에서도 10원 미만이 사라진 지 오래다. 기초연금 지급액도 100원 단위로 정리됐다. 커피전문점 가격표에는 아예 3.5와 같은 숫자가 나붙었는 데 이는 3500원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우리나라 화폐 단위는 1962년 화폐개혁 후 50여 년째 고정돼 있다. 그동안 경제 규모가 600배 이상 불어났으니 부조화가 생기는 건 당연하다. 이처럼 화폐 단위 변경이 무산되자 2009년부터 5만 원권이 발행됐다. 연간 수천억 원에 이르는 수표 발행·관리 비용을 줄이려는 응급처방이었다.
이렇게 탄생한 5만 원권은 그 자체로 기록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발행하는 화폐 중 최고 액면권이다.
지구촌 전체를 봐도 미화 1달러를 환산해보면 일본에서 120엔 인데 우리나라에선 1100원으로 환산된다. 1달러를 네 자릿수 화폐 단위로 환산하는 나라는 지구상에서도 몇몇 나라에 불과할 정도다.
그래서 현 정부도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겠다고 강조해 왔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은행이 5만 원권 100장을 시중에 풀면 그 중 77장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 이처럼 돈의 유통은 생각만큼 원만하진 않다. 모든 돈은 한은 금고를 떠나는 날이 출생일이다.
세상에 나오면 바쁘게 돌아다닌다.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간다. 그렇지만 지갑이나 금고에 갇혀 어둠 속에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수명은 수개월에서 길으면 1~2년 정도가 많다. 이렇게 한은으로 돌아온 지폐는 통상 이곳에서 일생을 마감하게 된다.
하지만 5만 원권 지폐는 그렇지 않다. 한은을 떠나자 마자 실종되는 5만 원권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만 해도 5만 원권의 환수율은 29.7%에 그쳤다. 100장 가운데 겨우 30장만 한은에 돌아올 뿐이라는 얘기다. 3년 전까지만 해도 환수률이 60%를 넘었으나 그 후 반토막이 났다.
그런데 지난해 말 현재 5만 원권 발행액은 52조 원에 이른다. 이 처럼 돌아오지 않는 5만 원권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전북 김제시의 어느 마늘밭에서 거액의 뭉칫돈이 발견됐다. 발견된 돈은 5만 원권 22만여 장으로 10개의 사과상자 안에 담겨 땅 속에 묻혀 있었다.
같은 시기에 서울의 한 백화점 물류센터에서 5만 원권으로 10억 원의 현금뭉치가 발견됐다. 세월호 참사 이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은신처에서 5만 원권으로 8억3000만 원의 비자금도 나왔다. 이처럼 돌아오지 않은 5만 원권들은 불법·음성적인 거래를 통해 지하경제로 흘러갔을 개연성이 크다.
007 가방 한 개에 5만 원권을 가득 담으면 5억 원이 들어간다. 10㎏짜리 사과상자에는 10억~12억 원을 담을 수 있다. 그래서 정치권 등에서 돌아다니는 검은 돈은 남의 눈을 피해 손쉽게 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되고 있다. 또 자손들에게 세금없이 현금으로 증여하는 수단으로도 안성맞춤이다.
5만 원권의 유통이 순조롭지 못하자 지폐에 그려진 신사임당을 보기조차 민망할 뿐이다. 언제 신사임당의 지폐가 음료수 상자 속에 감춰져 유통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떳떳한 고액권으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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