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의혹 투성의 대통령 사면권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월요논단] 의혹 투성의 대통령 사면권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 임명섭 논설고문
  • 승인 2015.05.03 18: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은 실형(實刑)을 선고받은 사람은 석방 이후 5년, 벌금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사람은 형 확정일로부터 5년이 지나야 사면을 받을 수 있다.
프랑스는 테러범,부정부패 공직자, 선거사범, 15세 미만 미성년자 폭행범은 아예 사면을 받을 수 없다.
독일은 수사 과정에서 잘못이 드러난 경우만 허용해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단 네 번만 사면을 실시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사면을 놓고 시끄럽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대국민 메시지를 통해 사면 특혜의혹에 대한 철저한 규명을 주문하면서 “과거부터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문제가 되고 있는 사면은 국민도 납득하기 어렵고 법치를 훼손해 있어서는 안 될 계기를 만들어주게 됐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때문에 “제대로 진실을 밝히고 제도적으로 고쳐져야 우리 정치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에 한 번 특사를 실시했는데 이때 정치인, 고위 공직자, 기업인은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그런데 최근 여의도 정가에서는 2007년 말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 대한 특별사면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특별사면이란 법원으로부터 형의 언도를 받은 특정 범죄인에 대해 국가원수가 국회 동의절차 없이 특권으로 형의 전부나 일부를 소멸시키거나 형을 선고받지 않은 사람의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제도를 말한다. 약칭 특사(特赦)이고, 사람이 아닌 특정 범죄(종류)를 지정해 국회동의를 얻어 범죄인의 형을 소멸하는 일반사면과는 다르다.
세상을 떠들석하게 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과 2007년 두 번이나 잇달아 특별사면을 받은 것이 문제가 됐다. 보통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유력 인사라 할 지라도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특이한 일이다. 이 정도라면 누가 보더라도 석연치 않을 일이다.
이번 특혜사면 사실이 드러난 것을 계기로 대통령 사면권에 대한 견제(牽制)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사면은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기에 누구도 이에 관여할 사항이 아니다. 대통령에게 이런 권한을 부여한 것은 법의 경직성에서 나올지 모를 선의의 피해자를 최종 구제하자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래서 자칫 사법부와 법의 권위를 훼손할 수 있기에 사면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과 신중함이 요구된다. 성 전 회장이 이렇게 두 번씩이나 특사를 받는 시점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각각 민정수석비서관과 대통령 비서실장의 위치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놓고 문 대표 측은 “돈을 받은 적이 없지 않으냐”고 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의혹이 증폭되자 문 대표 측은 두 번 다 관계 측의 요청이라고 발뺌했다. 그렇다면 당시 사면 과정을 명명백백히 국민 앞에 소명해야 할 것이다. 때문에 국민들은 혹 사면권이 정치적 흥정으로 이뤄졌거나 흥정을 가능케 한 비리는 없는 지를 밝혀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대 정권은 3·1절, 광복절, 성탄절, 취임 1주년, 임기 말 등 기회 있을 때마다 특사(特赦)를 단행했다. 김영삼 정부가 9회, 김대중 정부 8회, 노무현 정부 8회, 이명박 정부 7회의 특사를 시행했다.
그때마다 선거 공신(功臣)이나 유력 정치인, 고위 공직자, 기업인을 특사 대상에 끼워 넣었다.
객관적 기준 없이 멋대로 대상을 선정하다 보니 대법원에 상고했다가 두 시간 만에 취하하고 그 나흘 뒤 특사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10억 원대 뇌물을 받거나 회사 돈 수천억 원을 횡령하고 사면받은 사람도 여럿 있었다. 감히 일반인은 꿈도 꾸기 힘든 특사가 권력, 금력 집단의 뒷거래로 성사되고 있다는 의혹을 받게 했다.
때문에 사면을 놓고 좋게 말하면 진실게임, 나쁘게 말하면 진흙탕 싸움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번 정치권의 게임 승패에 따라 한 쪽은 타격을 입을 것 같다. 누가 뭐라고 말하든 대통령이 한 번 재가를 마친 명단이 수정된 사실만 봐도 의혹이 짙을 수밖에 없다.
누가 보더라도 이례적임은 분명하다. 서슬퍼런 새 정권의 위세를 이용했든, 거기에 눌렸든,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주고받기 위해 서로 거래를 했든 의혹 투성이다. 사면이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기는 하지만 역대 정부마다 사면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은 점은 대통령의 사면권이 그만큼 공적으로 행사되지 않았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사면권이 남용되는 것은 이를 정치 거래 수단쯤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만 해도 그렇다. 겉으로는 사회 통합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지난 정권과 화해 등 정치적 포석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더욱이 사면 대상 인사들은 한결같이 뇌물 수수, 공천 헌금 등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자들이다.
이런 식의 사면은 사회 통합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법 경시 풍조 만연으로 법치주의 근간만 훼손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뿐이며 차제에 개선되야 한다. 그리고 성 전 회장의 특사문제는 검찰 수사가 됐든, 감사원 감사 혹은 국회 국정조사든 어떤 형식으로도 의혹은 헌정의 미래와 정치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규명해 국민 앞에 명명백백히 밝혀야 한다.
비리를 저지른 권력층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특별사면 등으로 쉽게 풀려난다면 우리나라는 ‘부패공화국’으로 찍혀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