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아동학대 언제쯤 사라질까
[월요논단] 아동학대 언제쯤 사라질까
  • 임명섭 논설고문
  • 승인 2015.12.27 18: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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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친아빠의 감금과 학대에 시달리다 탈출한 11살 소녀에게 따뜻한 마음을 담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각계에서 쏟아져 훈훈한 감동을 줬다. 또 이 소녀가 치료를 받고 있는 인천시 남부아동보호전문기관에는 한 통의 전화도 걸려 왔다.
캐나다에서 살면서 잠시 고국에 들렸다는 한 주부는 소녀의 뉴스를 보고 “아이를 잘 키우겠으니 꼭 입양할 수 있게 해 달라”며 간곡한 뜻을 밝혔다. 그리고 국내 70대 노신사 역시 소녀를 보호하고 있는 기관에 직접 찾아와 “친아버지보다 더 잘 키울 자신이 있다.”며 양육할 수 있도록 부탁하고 돌아갔다.
소녀는 성탄절에 받은 토끼 인형을 들고 난생 처음 함박 웃음을 지어 주위 사람들의 코끝을 찡하게 했다. 이런 엇갈린 사연을 접하는 순간, 많은 국민들을 감격케 했다.
11살 소녀의 학대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여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한마디로 천인공노할 일이다. 도대체 세상이 어쩌다가 이런 지경이 됐는지 한숨에 가슴이 막힐 지경이다.
문제는 애처로운 일들이 우리 주변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이웃 어느 집에선가는 아이들이 다른 사람도 아닌 부모에 의해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리면 소름이 끼치고 끔찍하기만 하다.
어른들이 사회적인 불만에서 초래되는 분풀이를 자기 아이들에게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학대를 받으며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된 다음에 똑바른 심성을 발휘하기를 바라기도 어려울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아동을 마비 상태로 만들어 그처럼 잔인한 행동을 하게 했는지 의아할 뿐이다. 도저히 정상적인 성인의 행동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행되는 무서운 폭력을 눈감고 살아야 하는가?
가정폭력이 무서워 가출한 청소년들이 비슷한 사연의 또래들과 유사한 집단을 이루고 지낸다는 사실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번 사건도 컴퓨터 게임에 빠진 부모가 소녀를 학교도 보내지 않고 길게는 1주일 넘게 밥을 주지않고 굶기면서 2년 동안이나 상습적으로 폭행을 행사 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경찰에 구속됐고 비인간적인 학대에 도참한 동거녀와 친구도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됐다. 몸무게 16㎏의 바싹 마른 소녀는 추운 겨울 날씨에 속옷 차림에 맨발로 자기집(빌라) 가스 배관을 타고 탈출한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 소녀는 곧바로 부근 슈퍼마켓으로 몸을 가누며 들어와 먹을 것을 주워 담는 CC-TV 화면을 보는 순간, 온 국민이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아동 학대는 악질적인 범죄다.
사회든 가정이든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 아동 학대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서글픈 단면이다. 우리나라는 체벌을 훈육으로 착각하고 아이를 부모의 부속물로 여기는 뿌리 깊은 가부장적 문화 때문에 아동학대에 취약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가정에서 스스로 아동학대 예방 및 제재를 하지 않으면 학대를 줄어들기 힘들 것이다. 미국에선 아동 학대 시 즉각 부모·자녀를 격리하고 심사해 친권을 박탈하기도 한다.
또 서구 선진국은 조기 발견을 위해 학대가 의심될 경우 강제 조사하고 체벌을 법으로 금지시키고 있다. 영국은 정신적 학대도 처벌한다는 신데렐라법을 예고했고 이웃 일본도 학대 아동뿐 아니라 학대 의심 아동도 신고하도록 범위를 넓혀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과 제도적 장치는 선진국에 비해 미비하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엽기적 아동학대 사건이 일어나면 한 번 들끓었다 잠잠해지는 것을 더 이상 반복해선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 아동 학대로 사망할 확률이 아동 10만 명당 1.16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국 중 3위다. 부끄러워야 할 일이다. 지난해 일어난 울산 계모 학대 사건 이후 ‘아동학대처벌특례법’이 제정됐지만 이 역시 사후대책 위주일 뿐이다.
아동학대는 80% 이상이 친부모에 의해 저질러진다는 점에서 친권 제한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특례법은 아동이 학대를 당해 응급조치를 받을 경우 친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일선 수사기관이나 학교 등에선 친권을 제한하는 데 소극적이어서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번 피해아동도 2년 간 학교에 나오지 않았어도 학교 등이 무관심한 본보기였다.
아이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파수꾼이 돼야 한다. 그리고 피해 아동의 심리치료와 대리 양육을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시켜야 한다. 피해아동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서 ‘쉼터’ 마련도 확대돼야 한다.
어린 시절에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으로부터 당한 학대 트라우마는 노인이 될 때까지도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한다. 어린이들이 맑고 밝게 자랄 수 있도록 어떤 폭력도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려면 국민 모두가 파수꾼으로 나서야 한다.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지만 혹시 주변에 학대받는 아이들은 없는지 이웃들에게도 관심이 필요하다. 경제적 파탄과 이혼으로 갈수록 결손가정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어느 구석에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을 위로해주는 마음가짐만으로도 추운 날씨가 훨씬 훈훈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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