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 유언과 죽음
[목요논단] 유언과 죽음
  • 박창원 교수 충남도립대 인테리어패션디자인과
  • 승인 2016.04.27 1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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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는 버나드 쇼의 묘비에 쓰여 있는 글은 매우 짧지만 해학과 함께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인생을 사는 동안 어영부영하지 말고 의미 있는 삶을 살라는 주장일 것이다. 죽음은 생과 세계와의 단절을 가져오기에 유언은 단절을 위해 준비하는 최후의 말이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유언을 남겼으며 브룩 애스터는 “돈은 비료와 같아서 여기저기 뿌려줘야 한다”며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실천을 요청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이 짧은 순간을 위한 것이었군”이라는 유언으로 죽음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회한했으며 오다노부나가는 “어쩔 수 없군”이라는 말로 삶의 포기와 인생의 허망함을 표현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유언에는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는 말을 남겼다. 삶의 마지막 길에서도 상대를 원망치 않고 끌어안은 마음, 진정으로 용서하고 관용을 베푼 깊은 마음, 그리하여 스스로 떳떳함을 보이며 그 삶을 담았다.
이렇듯 유언에는 산 사람들이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라며 삶의 허망함보다는 살신성인의 정신을 담은 말들도 많다.
안중근 의사의 유언을 보면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고 했다. 이순신 장군 역시 전쟁 중 병사들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으로 장군으로서의 임무를 다했다. 이런 유언들을 보면 죽음은 삶의 연장선상에서 있는 것이지 삶과 단절된 것은 아니며 이들에게 죽음의 마음은 그저 삶의 의무를 지속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일 뿐이며 거기에 두려움의 감정 등이 담겨져 있지는 않다.
장자는 죽음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까. 장자는 노자의 조문 사례를 통해 죽음에 대해 말한다. 노자가 죽자 진일이 조문을 하여 곡을 세 번만 하고 만다. 이를 지켜본 진일의 제자들이 이러한 무성의에 납득이 안가 스승에게 질문한다. “어떻게 친한 친구가 죽었는데 형식적으로 세 번 곡하고 끝낼 수 있단 말입니까?” 제자의 눈에는 진일의 조문에서 진정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진일은 “어쩌다가 선생이 태어난 것은 때를 만난 것이오. 어쩌다가 떠난 것은 자연에 순종한 것이네. 때를 편안히 여기고 삶과 죽음의 진리에 순응하면 슬픔과 기쁨이 들어올 수 없지”라고 답한다.
결국 죽음이란 것이 영화로운 인생과의 결말이라고 생각하는 태도와 삶과 자연의 연속으로 생각하는 태도간의 차이가 있다. 이순신 장군이 순조에 의해 질투 때문에 죽음의 길을 선택했다는 해석들도 있으나 이순신 장군은 죽음에 초연했다. 살려는 자는 죽고 죽으려는 자는 살 것이란 표현으로 사람들을 독려했다. 장군에게는 죽음도 전투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윤봉길 의사는 죽기 전에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라는 유언을 두 아들 모순과 담에게 남겼다. 윤봉길 의사는 자식들에게 살아 있는 동안 반드시 조선을 위해 용감한 투사가 될 것을 요구했다.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라고 애정을 표하고 맹가와 혁명가 나폴레옹 발명가 에디슨이 되도록 요구했다. 어찌 보면 아들들에게 남기는 말일 수 있으나 어찌 아들들이 맹자와 혁명가와 발명가가 모두 될 수 있겠는가. 이는 우리 민족에게 남기는 윤 의사의 유언으로 이해된다.
많은 이들이 유언에서 인생의 허망함을 이야기했지만 반대로 죽음을 가치 있는 일을 다 하지 못하고 마치는 아쉬운 단절로 이해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죽음은 마치지 못한 업무에서 퇴근일 뿐이며 이들에게 유언은 그 일을 마쳐달라는 메모인 것이다.
매년 윤봉길 거사 기념일인 4월 29일이 다가오면 그 분이 죽음에 대해 가졌던 숭고한 마음을 되새기며 그 분의 유언이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하고 작용하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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