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으로 본 세상] 인생길 나그네의 덕목과 여괘(旅卦)
[주역(周易)으로 본 세상] 인생길 나그네의 덕목과 여괘(旅卦)
  • 김재홍 충남대학교 교수
  • 승인 2016.06.07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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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느 통계학자가 상고시대부터 지금까지 지구를 다녀간 나그네들이 약 1060억 명이라고 추정했다.
이 수치의 정합성 여부는 제쳐두고도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지구를 다녀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지구를 다녀간 수많은 이들 중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자각하고 돌아간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불가(佛家)의 논리를 보면 이 세상에 수많은 생명 중에서 사람으로 태어나기란 억만 겁의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태어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고 돌아가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인간의 생명이란 이 세상에 한 번 오기도 어려운데 그 소중한 생명이 얼마 안 가서 죽어야 하는 생명의 유한성을 가지고 있다.
즉 인간은 누구나 한 번 태어나면 반드시 한번은 죽어야 한다. 인간의 생명이란 하늘이 우리에게 준 축복의 시간이라고 한다. 이 소중하고 유한한 시간을 의미 있게 그려가야 하는 것이 지구촌을 다녀가는 나그네들의 사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많은 인생길의 나그네인 우리 모두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에 대한 덕목에 대해 주역에서 그 길을 묻고자 한다.
나그네는 여행길에서 성인의 말씀에 순종해야 길(吉)하다.
주역의 화산여괘(火山旅卦)에서 여(旅)는 나그네, 방랑인, 손님으로서 지구상에 와 있는 시간여행의 나그네를 의미한다.
그리고 시간여행을 하는 나그네는 밝은 진리에 머물러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지어지선(至於至善)의 경지에 나아가 머무는 것이 나그네인 '여'라는 것이다. “시간여행의 나그네는 성인지도에 겸손하고 유순하게 순종해야 길하다”고 말한다.
나그네는 진리의 집에서 성인의 말씀을 자각하고 길동무를 얻어야 한다. 화산여괘에서는 “노자를 품속에 간직하고, 마음이 곧은 어린 종을 얻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 구절은 나그네의 시간 여행에 필요한 3덕목인 즉차(卽次), 기자(其資), 동복(童僕)을 말하고 있다.
첫째, 성인의 말씀이 있는 진리의 집으로 나아가라고 한다. 이 구절에서 말하는 즉차의 즉(卽)은 진(進)의 의미로 나아감을 말한다. 다음으로 ‘차(次)’는 사(舍)는 집의 의미로서 나그네가 거처할 장소를 뜻한다. 즉 군자가 머무는 곳, 돌아갈 고향집(진리의 집), 성인의 말씀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즉차란 진리의 집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또 성인의 말씀을 자각하라고 말한다. ‘회기자(懷其資)’란 문자적으로는 여행할 노자를 품고 있으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구절이 가지고 있는 철학적인 함의는 돈을 품고 있어야 된다는 말이 아니라 성인지도를 자각해서 가슴에 품어라 는 뜻을 노잣돈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즉 성인의 말씀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길동무인 도반(道伴)을 얻어야한다는 것이다. 바르고 사심이 없는 어린 종을 얻는다는 말이다. 이 때 바르고 어린 종이란, 나그네의 시간여행 길에서 길동무,  도반, 스승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공자는 길동무로서 도반인 “어린 종을 얻으면 근심이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구절의 내용을 요약하면 시간여행의 나그네는 진리의 집으로 나아가 성인의 말씀을 자각하고 길동무와 함께 나아가라고 권하고 있다.
나그네가 여행길에서 사소한 것에 억매이면 재앙을 초래한다. 
주역에서는 나그네의 여행길에서 진리에 대한 신념이 강건하지 못해서 소인지도에 대한 유혹에 빠지거나 잡념에 치우친 언행을 한다면 이것을 이기적이고 천박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괘 초효사(初爻辭)에서 “사소한 일에 얽매이니, 이것이 그 재앙을 가져오는 바이다”라고 하여 이것은 나그네의 시간여행을 시작하면서 소인지도에 얽매이면 그 결과로 재앙을 불러오게 된다고 엄중히 경고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경계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나그네가 여행길에서 인간적인 욕구와 교만을 버려야 천명(天命)을 얻게 된다.  
나그네가 교만하면 “자기 숙소를 불태우고, 도반, 동반자까지 잃어버려 위태롭다”고 한다. 이것은 나그네가 교만으로 타락한 소인의 세계, 향락의 세계에 들어가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밝은 진리의 상징인 꿩을 쏘아잡기 위해서는 화살 하나를 없앰이라, 마침내 명예와 명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타락한 세상을 벗어나 진리의 밝은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를 버려야 밝은 하늘 볼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반면에 교만함을 버리지 못하고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 잡혀 있다면 어찌 성인의 말씀이 가슴 안에 들어 올 수 있겠는가 반문한다. 주역에서는 “새가 제 집을 불태우니, 나그네가 처음에는 웃고 나중에는 울부짖음이라, 흉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의 소식을 듣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은 사람들이 교만을 버리지 못한다면 아무리 참된 진리를 말해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기가 지나면 잘못됐음을 알고 후회하며 울부짖고 몸부림치게 된다는 것을 주역에서는 간절히 경고하고 있다.
여괘(旅卦)는 이 땅에 하나의 나그네로 와서 인생을 살다가 가는 나그네의 여정 속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말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내일이 죽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남은 시간을 되돌아본다면 절박감을 가지고 하늘이 내려준 이 축복의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려는 노력을 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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