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으로 본 세상] 감사와 기쁨에 대한 성현들의 이야기
[주역(周易)으로 본 세상] 감사와 기쁨에 대한 성현들의 이야기
  • 김재홍 충남대학교 교수
  • 승인 2016.06.21 17: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감사란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있는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고맙게 여기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감사를 통한 기쁨을 함께하는데 매우 서툴었고 부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원인은 여러 방면에서 찾을 수 있으나 그 중에서도 역사적인 측면에서 100여 년 전의 우리 근현대사에서 살펴본다.
우리나라는 일제 36년의 식민통치, 8.15해방 직후의 혼란과 한국전쟁, 1960대의 절대빈곤의 시간을 보내면서 대다수의 국민들을 좌절과 절망 속에 살아왔다. 이러한 암울한 현실들이 우리 모두는 감사에 메마르게 됐고 기쁨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맛보기에는 너무 가혹한 시간들이었다.
이후 우리 사회는 산업화시대로 진입하면서 기아와 빈곤으로부터의 탈피하기 위한 우리들의 삶은 치열했다. 박정희 정권이 들어선 뒤 경제발전이라는 희망찬 목표를 향해서 하루를 25시처럼 살면서 능률의 극대화속에 파묻혀 살아 왔다. 그 결과 놀라운 경제성장을 통해서 우리 사회는 빈곤탈피에 성공했다. 또 생활수준은 질적 양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외향적 공업화와 불균형 성장전략의 뒤안길에는 소득 간, 지역 간, 산업 간의 격차가 심화됐다. 감사와 기쁨보다는 도리어 상대적인 빈곤과 욕구불만이 팽배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회적 현실은 우리에게 감사를 통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하게 되었던 요인들이 아니었나 싶다.
주역에서는 진리의 자각을 통해서 기쁨을 얻을 수 있다. 감사와 기쁨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기쁨은 안화열락(安和悅樂)을 뜻한다. 즉 편안하고 온화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열락을 말한다. 이 때 열락이란 진리의 자각에서 오는 내면적인 기쁨을 말한다.
이에 대해 공자는 뇌지예괘(雷地豫卦) 단사(彖辭)에서 “기쁨은 순종함으로써 움직이는 고로 천지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제후를 세우고 무리를 움직이는 것이랴. 천지가 이치를 따라 움직이므로 해와 달이 지나치지(다르지) 않고 사시가 어긋나지 아니, 성인이 순종하며 움직인 즉 형벌이 맑아 백성이 복종하나니, 기쁨의 그 마땅함의 뜻이 크도다”라고 했다.
이 구절은 천도(天道)에 순종하며 지도(地道)와 인도(人道)를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천하 만민이 모두 즐겁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넓고 넓은 천지도 순종으로서 움직이고 자연의 이법에 따라 활동한다는 것이다.
불가(佛家)의 ‘금강경’ 제2장에서도 ‘최고의 은혜’는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은혜라고 한다. 즉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은혜에 감사하면, 기쁜 마음으로 화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역에서는 해와 달의 움직임은 단 한번도 틀리는 일이 없다고 한다. 또한 춘하추동사계절의 변화도 어긋나는 일이 없다. 이로써 만물이 나고 자라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의 운행법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진리에 순종하고, 움직이면 열락이 생겨 기쁨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하늘은 크게 쓰고자 하는 자에게 시련을 준다고 한다. 주역에서는 하늘은 고난을 통해 기쁨을 맛보게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공자는 주역 택풍대과괘(澤風大過卦) 단사(彖辭)에서 “큰 과실은 대들보가 휘어진 것이다. 이러므로 천도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순종하고 공손하게 받아드리며, 이를 기쁘게 행하면 의지할 바가 있어 이롭고, 마침내 만사가 형통하게 되니라”라고 한다. 이것은 하늘은 죄를 짓거나 하늘의 뜻을 거역하지 않아도 대들보가 무너지는 시련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진리에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써 기뻐하고 실천하면 모든 일이 형통해 진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맹자는 고자장(告子章) 하편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맹자가 이르기를, 하늘에서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큰일을 맡기는 명(命)을 내리려면 반드시 먼저 그들의 심지를 괴롭히라고 그들의 근골(筋骨)을 수고롭게 하라고 그들의 육체를 굶주리게 하며, 그들 자신에게 아무 것도 없게 하여서, 그들의 하는 것이 그들이 해야 할 일과는 어긋나게 만드는데, 그것은 마음을 움직이고 자기의 성질을 참아서 그들이 해내지 못하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서이다”라고 했다.
이 구절이 가진 ‘함의’는 하늘이 크게 쓰고자 하는 자에게는 시련과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을 거치게 하고, 이러한 직접체험을 통해서 진리에 대한 확신과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고자 함에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감사를 통한 기쁨은 삶의 향기이다. 신약성서 테살로니카 전서(5장 16~18절)에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했다. 이 말씀도 감시와 기쁨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가족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자. 그러면 우리의 가정과 주변이 기쁨에 넘쳐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감사와 기쁨은 삶의 과정에서 직면할 수 있는 고통과 난관도 비교적 가볍게 넘길 수 있다. 아무리 거칠고. 하찮은 것이라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성현들이 밝히고 있다.
우리 모두 무모한 바램과 욕심을 버리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아름다운 마음으로만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즉 감사를 통한 기쁨은 삶의 원동력이 되어 우리의 마음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향기 있는 삶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지족(知足)이란 만족을 아는 것이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필요한 만큼 가지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성현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외치고 있다. 이제 마음의 귀를 열어보자. 행복으로 나아갈 수 있는 외길에서 오직 우리의 선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