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조선시대 충무공 김시민 장군을 아시나요?
[월요논단] 조선시대 충무공 김시민 장군을 아시나요?
  • 임명섭 주필
  • 승인 2016.09.18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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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김시민 장군이 9세 때 생가터에서 활을 쏘아 이무기를 잡았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잣밭 마을 어귀에는 장군의 상무 정신과 용맹함을 기념하기 위해 ‘활로 뱀을 쏘아 죽였다’는 의미의 ‘사사처’를 알리는 큰 표석만이 쓸쓸히 자리하고 있다.
천안에서 태어나 15살까지 유년기를 보내면서 사람과 가축을 해치는 이무기를 뽕나무로 만든 활로 뱀을 잡는 장군의 용맹함을 보여줬다. 이처럼 상무정신이 뛰어난 충무공 김시민장군의 탄신기념일이 올해로 462주기를 맞게 됐다.
그런데 장군의 탄신기념일이 어느해 때 보다 올해는 의미있는 기념행사를 맞게 돼 후손과 지역사회의 관심 대상이 됐다.
장군의 탄생지인 천안 생가지에는 현재 역사적 사실이 기록으로만 남아 있을 뿐 장군의 유물, 문화재 등은 없고 유허비 등 비석만 초라하게 세워져 있을 뿐이다.
장군의 유적지를 찾는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주고 있다. 새로이 다듬어진 충무공 김시만장군기념사업회는 조선시대 장군을 후손들에게 산교육장화해 충절과 호국정신을 심어주기 위해 갖가지 뜻있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4대 중요 및 숙원사업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장군의 생가지인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가전리 460-1번지(충청남도 기념물 제166호로 지정 고시)를 중심으로 국가사적지 지정과 함께 성역화사업을 정부와 함께 추진하고 있다. 또 대원군 때 생가지에 세워져 있던 해체된 충열사의 복원화사업이다. 그리고 해군으로부터 충무공 김시민장군함(이즈스함급)명명 추진사업도 함정의 건조와 함께 약속을 통보 받은 상태이다.
그리고 천안시내 국도변 주택지에 위치한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동상도 천안시와 협의로 신설되는 시내 도솔공원에 이전이 추진되고 있다. 이같은 중요 사업들은 김법혜기념사업회장을 비롯한 새 집행부가 들어서면서 획기적으로 추진되고 있어 기대가 크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 탄신기념식은 24일오후 2시 천안박물관에서 헌다례, 기념식, 축하공연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이 고장의 영웅 충무공 김시민 장군은 1554년(명종9년) 당시 천안 목천현에서 태어났다.
생가 터는 안동 김씨 학암종중이 소유하고 있던 부지를 천안시가 국비 3억 원과 시비를 들여 매입한 후 지장물 철거 및 평탄 작업 등을 거쳐 현제는 생가 터 표지석을 세워 놓았을 뿐 잔디만 무성한 상태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유허지에는 구암[거북 바위] 1기와 장군의 유허비 1기, 400년 넘은 느티나무 한 그루, 사사처 표시석 만이 떨렁 지키며 용맹스럽던 장군을 알리고 있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은 임란의 영웅이지만 생가지는 허전하다. 하지만 충북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의 김시민 장군 묘소가 있고 그곳에는 충민사와 충렬사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또 승첩지인 경남 진주시에는 진주성이 있고 김시민 장군 동상과 제향을 올리는 창렬사가 있어 생가지와는 다르다. 장군의 탄생지인 천안 유허지에는 이렇다 할 유적이 전무한 상태여 부끄러울 뿐이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은 25살에 무과에 급제, 진주목사가 됐다. 그때 일본군이 침투하자 3800명의 군대로 왜장 하세가와가 이끄는 2만 명의 군대와 맞서 대승을 거뒀다.
숨지기 전 충무공 김시민장군은 “나는 충의를 맹세하고 진주성을 지켜 국가 중흥을 근본으로 삼을 것이니 힘을 합쳐 싸우면 오랑케인들 무엇이 두려우랴/ 나를 따르는 자 살 것이며 도망하는 자 멸할 것이니 감히 도망하는 자는 목을 베리라/ 나의 엄지는 이미 떨어지고 식지와 장지로 활을 당기다 남은 세 손가락 마져 떨어질 때까지 싸우리라”고 울부짖었다.
장군의 싸움은 조일전쟁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으로 불리고 있는 유명한 역사로 전해지고 있다. 장군은 이 싸움에서 왜적의 총탄을 맞고 39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그 후 나라에 무공을 세우고 죽었으니 충무공이 됐다.
충무공 시호를 받은 장수로는 김시민 장군과 함께 이순신, 남이, 정충신 등이 있다. 숙원사업이 이뤄져 장군의 찬란했던 업적과 상무정신, 용맹함이 나라를 지켰음을 후손들의 가슴속에 깊히 심어줄 수 있도록 이순신장군의 현충사처럼 성역화를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후세에 국난 극복의 명장에 대한 업적을 알리는 산역사교육장으로 빛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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