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고난을 통과한 생이 주는 울림
[양형주 칼럼] 고난을 통과한 생이 주는 울림
  • 양형주 목사 대전 도안교회
  • 승인 2017.03.26 17: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얼마 전 경기도 판교에 있는 한 기업 본사에서 이색전시회가 일반인들에게 열렸다.
그것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1세의 유품을 전시하는 자리였다.
특별히 이 전시회에 가장 주목을 받는 유품은 ‘나폴레옹의 모자’였다.

우리 나라사람들이 기억하는 나폴레옹의 이미지가 있다.

나폴레옹이 두 발을 들고 일어선 흰 백마를 타고 붉은 망토를 두르고 멋진 모자를 쓴 채로 한 손을 들어 저 멀리 방향을 가리키는 그림이 있지 않은가?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1801년에 그린 ‘생베르나르 고개를 넘는 보나파르트’라는 유명한 작품이다. 이 그림에 나온 나폴레옹의 모자를 기억할 것이다.

이 모자를 이 기업의 CEO가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 경매에서 188만4000유로, 우리 돈으로 하면 약 25억8000만원에 사들였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모자일 것이다.

아니, 무슨 이유로 이 모자에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했을까?

그 이유는 이 모자가 주는 상징적인 울림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유난히 키가 작아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성인이 되었어도 그 키가 불과 150cm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사전에 불가능을 없다’고 말한 것처럼 불굴의 개척정신으로 꿈을 키워 35세에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물론 그의 삶 전체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그러나 이 모자는 그 기업의 CEO에게 나폴레옹이 불가능에 도전했던 수많은 역경을 지난 삶을 상징하는 큰 영감을 주는 모자였던 것이다.

이 회사의 CEO는 가난한 어린 시절 나폴레옹의 도전정신에 매료되어 자신의 삶을 모험으로 내던져왔고, 이제는 이 회사가 기적적으로 든든하게 서게 됐다.

이 CEO에게 나폴레옹의 모자는 자신의 삶 전체에 울려퍼지는 신성한 울림을 주었던 것이다. 이처럼 삶의 역경을 멋지게 통과한 사람의 생은 많은 울림을 준다.
한국 개신교 역사 가운데 가장 많은 울림을 주었던 노래가 있다. 바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이다.

이 곡은 사실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있는 신자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이기도 하다.
1989년 독일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모든 독일 시민이 나와 함께 떼창을 부른 노래가 바로 이 곡이었다.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란 유명한 연설을 하고 함께 부른 노래도 바로 이 곡이었다.
또 넬슨 만델라가 석방되어 나올 때 그를 사랑했던 수많은 국민들이 나와 함께 부른 노래이기도 했다.
 
이 곡이 이렇게 큰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이 노래의 가사를 지었던 존 뉴튼의 삶이 주는 울림 때문이다.

그는 1748년 노예상인으로 방탕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배가 폭풍우로 배가 좌초될 위기에 처하고, 존 뉴튼은 신에게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기적적으로 그의 배는 무사히 항구에 도착한다.

죽음에서 살아난 뉴턴은 지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노예상인을 그만 둔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관통한 커다란 울림을 담은 노랫말을 쓰는데 이것이 바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다.

이 노랫말같이 그는 죽는 날까지 신에게 헌신하며 아름답게 살아간다. 그러기에 고난을 통과한 아름다운 생이 주는 울림이 있다.

요즈음 나는 어떤 울림을 내 주변에 울려주는가? 맑은 울림인가? 탁한 울림인가? 고난은 회피할 것이 아니라, 내 속의 울림을 점검할 기회다.

우리 주변의 리더들은 어떤 울림을 전하는가? 그들의 울림은 아름다운가? 조용히 귀를 기울여보자.[충남일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