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현 칼럼] 자기 머리 못 깎는 스님?
[김창현 칼럼] 자기 머리 못 깎는 스님?
  • 김창현 서울대학교 지리학 박사
  • 승인 2017.07.03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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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에서 살게 되면서 필자가 가장 처음에 받았던 인상은 도로가 시원시원하게 뚫려 있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 대전은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라고 배웠는데, 역시 교통의 도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첫인상이 무참하게 깨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로가 넓은 만큼 차도 많았고, 신호대기도 길었으며, 교통체증도 만만치 않았다. 이것이 필자 개인의 느낌인지 알아보기 위해 교통 관련 통계를 뒤져보았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2015년 교통연구원에서 조사한 ‘교통수단 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대전의 자가용승용차 분담률은 58.4%로 전국 평균인 55.1%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다(도보를 제외한 통계).

인구규모가 엇비슷한 광주광역시(146만 명, 대전 150만 명)의 자가용승용차 분담률은 62.3%로 대전보다 높다. 세종의 경우, 이 비율이 72.0%나 된다. 
그런데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광역시별 승용차 주행속도를 보면(2015년 기준), 대전시가 23.2km/h로 광주시 29.9km/h보다 주행속도가 6km/h이상 낮다. 즉 대전 차량이 광주 차량보다 느리게 주행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심지어 교통체증이 심하다고 알려진 서울도 25.2km/h로 대전보다는 빠르다.

대전은 전국 교통의 요지이고, 광주보다 더 승용차를 덜 타고 다니며, 넓은 도로를 만들어 놓고도, 광주사람들과 서울사람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도로 위에서 허비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참고로 대전의 시내버스 평균 주행속도는 17.4km/h로 전국에서 꼴찌이다.
언뜻 생각하기에, 대전의 비효율적인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은 대중교통의 확충이다.

대전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트램 도입 역시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트램은 알려진 것처럼 교통분담 효과가 뛰어나며 미관상으로도 큰 자산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트램 도입이 비효율적인 대전의 교통 문제를 일거에 해소해주지는 못한다.
트램보다 중요한 것은 대전 시민들이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불편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관심이다.

운전자로서 대전시내를 주행하다 보면, 넓은 도로에 무심하게 펼쳐져 있는 횡단보도 사이로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풍경을 바라보다 자주 하품을 하게 된다. 또한 보행자로서 대전을 걷다 보면 지루한 횡단보도 신호를 너무 자주 만난다.

불편한 대전의 시내 교통을 온몸으로 극복해 보고자 하는 시도도 포착된다. 1인용 운송수단으로 대전 시내를 미끄러지듯 활보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향후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대전 교통 시스템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고민을 아래로부터 받아서 대전 시내교통에 반영해줄 수 정책적 의지의 존재 여부이다.

1인용 운송수단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대전 시민들이 어느 도로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면서 지루해 하고 있는지, 누군가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결과물을 대전 교통체계에 반영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대전시민들은 교통의 요지면서도 정작 시내교통은 엉망이라는, ‘자기 머리 못 깎는 스님’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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