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사태로 대한민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참담한 기분이 드는 먹거리에 대한 불신. 계란을 생각하자 어린 시절 겪은 닭에 관한 일이 생각나 몇 자 적어본다.
그해 여름방학. 시골 고모 댁에서 여름을 나고 있었다. 소나기가 지나간 어느 더운 날. 알록달록 고무신을 신고 갓 사귄 마을 친구 집에 놀러 갔다.
마당을 들어서며 농기구를 챙기시는 친구 아버지께 꾸벅 인사를 하고는 정순이를 부르려던 순간, 맹렬한 기세로 나를 향해 돌진하는 닭을 보았다.
잡아먹을 듯 똑바로 노려보는 성난 눈동자. 목 옆 으로 가시처럼 펴진 갈기와 양 옆으로 펄떡이는 날개, 땅을 찍어 누르듯 딛으며 소나기 뒤의 흙덩이를 움켜 쥔 발톱. 어찌 할 틈도 없이 다가온 닭은 눈높이까지 펄쩍 뛰어오르며 나를 위협했고,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마루로 도망을 쳤다.
신발이 한 짝은 벗겨지고 한 짝은 신은 채로 마루로 올라섰는데, 어느 틈에 나를 따라 마루로 올라선 닭은 고무신이 벗겨진 발 뒤꿈치를 그 견고한 부리로 쪼아댔다.
비명을 지르며 작은 방문을 열자 낮잠을 자던 정순이가 깨어났다.
내 뒤에서 씨근대며 분노를 삭이지 못하는 닭을 본 정순이가 모든 상황을 눈치 채고는 빗자루로 닭을 위협해서 마당 구석으로 몰아냈다.
그때까지 이 모든 것을 다 지켜보신 친구 아버지는 닭을 보며 대견하다는 듯 “고 놈 참, 고 놈 참”을 대뇌이셨다.
닭이 그런 걸 알면서 친구를 조심시키거나, 닭을 격리시키지 않았다고 정순이는 투덜대며, 모이를 줘서 닭을 한 쪽으로 몰아 중간 문안에 가뒀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정순이는 우리가 놀러오면 여러 마리의 닭 중에서 장 닭이라 부르는 그 수탉만 격리했기에 아마도 우릴 공격할 기회만 노리고 있었지 않았나 싶다. 우두머리인 이 닭은 자기 영역 안에 침입자가 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데 정순이네 장닭은 동네에서도 소문난 사나운 장닭이었다.
그날 밤 놀라 헛소리를 하며 잠에서 몇 번을 깨는 나를 보신 고모가 뒷날 정순이네 아버지에게 따지셨고, 정순이 엄마가 애호박 몇 개를 싸오셨고, 고모도 호박전을 정순이네 집에 주시며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닭이라고 하면 병아리를 품은 암탉만 생각하던 내게 그 날 일은 닭을 달리 보는 계기가 되었고, 친구 아버지의 닭에 대한 무한 사랑의 눈빛을 떠 올릴 때마다, 닭도 강아지 못지않게 집을 잘 지키는 반려동물로 손색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물론 성난 닭의 그 매서운 눈빛과 신발이 벗겨졌던 오른쪽 뒷꿈치의 아릿한 동통이 새삼스럽지만, 그때의 암탉들이 낳았던 계란은 참으로 건강했을 것이다.
껍질이 잘 깨지지도 않았고, 계란 노른자도 잘 풀어지지 않았던 것은 맹검류의 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늘 주변을 철통같이 지키던 수탉의 보호 아래 후손을 이어가려던 닭들의 생존본능 환경을 우리가 충실히 만들어 줬기 때문 일 것이다.
이번 사태가 그런 환경을 만들어 줄 새로운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잘 키운 건강한 계란과 제대로 값을 치르고 우리의 건강을 담보받기.
지금 그 건강했던 수탉을 기억하며, 그 때의 그 건강한 계란들을 만나고 싶다.[김미경 계룡시의원]
형세가 고스란히 전해져옵니다~^^
요즘의 양계장닭들은 넘불쌍하죠
발전된 편리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때로는 옛방식이 그립고 좋았던게
많기는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