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대흥동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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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귀향
  • 김우영 작가
  • 승인 2007.03.18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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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9988, 1234

김우영 글

그류와 그니는 생선회요리를 가운데 놓고 마주 앉았다. 평소에는 시루봉 카페 주인과 일일 종업원 디제이로 생활하다가 막상 단 둘이 마주 앉으니 어색했다. 물론 오늘은 카페의 주인인 그니가 먼저 그류를 보자고 하여 만나긴 했지만 주종(主從)에 관계는 엄연히 권력처럼 굳게 흐르고 있었다.
만나자고한 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류씨, 요즘 우리 카페에서 일하기 어떼요? 힘들지요?”
“아, 아닙니다. 재미있게 잘 생활합니다”
그니는 소주에 오이채를 섞어 주전자에 담아온 술을 그류에게 따라주며 말한다.
“오늘은 다른 뜻은 없고 그간 수고한 그류 디제이에게 술 한 잔 사고 싶었어요. 편안하게 술 한 잔 해요”
그류는 반가운 기색을 하며 술잔을 잡았다.
“예 감사합니다. 즐겁게 들지요”
그류와 그니는 시루봉 카페 운영과 음악실 운영에 대하여 깊은 의논을 하였다. 그리고 문학과 미술, 잡다한 신변잡기에 이르기까지 대화를 주고받았다.
취한 얼굴로 그니는 힘차게 말을 한다.
“내 이름도 그니이고, 그 쪽도 그류이니 우리는 그씨네 종친이군요. 호호호--- 자, 그럼 그씨네 종친의 화합과 사랑을 위하여 건배 할까요!”
그류는 취한 기분을 빌려 호쾌하게 말을 받았다.
“그렇게 하지요. 그럼 제가 건배 제의를 하지요”
그니는 씽긋 윙크를 그류에게 보내며 말한다.
“좋아요. 그 특유의 문학적 감각으로 건배사를 해보세요”
그류는 술잔을 높이 들며 제의한다.
“자, 그럼 제가 건배제의를 합니다. 제가 먼저 선창하면 따라해야 합니다. 9988, 1234!”
그니도 얼결에 잔을 높이 들고 소리친다.
“9988, 1234!”
“하하하 ---하하하---”
둘은 술잔을 탁자에 놓고 박수를 함께 쳤다.
그리고는 그니가 그류에게 묻는다.
“9988, 1234 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그류는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예, 9988이란 말은 99세까지 팔팔하게 산다는 뜻이고요, 1234는 하루, 이틀, 사, 나흘 정도 아프다는 얘기입니다. 다시 정리하면요,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 이틀, 사, 나흘 정도 아프다가 가볍게 죽어주자는 얘기 입니다”
그니는 손으로 입을 막고 웃으며 말한다.
“호호호 그 말 재미있네요. 우리 정말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하루, 이틀 사, 나흘 살다가 함께 죽어요”
“그렇게 하세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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