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빌고 빌어 여기에 아빌라
[스티브의 스페인 문화 프리즘] 빌고 빌어 여기에 아빌라
  •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 승인 2019.08.22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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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빌라 성벽
아빌라 성벽

[자유기고가 김덕현 Steve] 18세기 조선 후기, 성군인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살아생전 못다한 효심을 보이고자 했다. 수원의 화성은 이 배경 속에 탄생한다. 죽은 아버지를 위해 산 백성을 쫓아낼 수는 없는 터라, 정조는 이주 장소를 준비시켜놓고 가옥 건축비에 이사비용까지 넉넉히 주어 사람들을 새 마을로 옮겨 놓았다. 이 마을은 지금의 수원이 되었고, 조선 최초의 신도시 개발붐이 이루어진 수원 전체를 방어하는 화성은 훗날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까지 등재된다. 지금은 수원화성 문화제로까지 이어져 탄탄한 지역행사로 자리잡았다.

고요한 은자의 나라 동방의 조선에서 수원화성의 축조에 훨씬 앞선 11세기에 서방 끝의 수다스런 기사의 나라인 에스빠냐 왕국, 거기서 통일 전 왕국의 모태가 되는 카스티야와 레온 자치지방에선 이슬람교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거대한 성벽을 짓는다. 고려 초기에 해당하는 그 때, 성벽을 잘 세워 방어한 곳이 바로 이곳 아빌라이다.

예수의 테레사 성당과 테레사 성녀 동상
예수의 테레사 성당과 테레사 성녀 동상

아빌라의 정식 이름은 Ávila del Rey, 또는 Ávila de Los Caballeros 로 왕의 아빌라 와 기사의 아빌라 란 뜻을 갖고 있다. 도시에 들어서기 전부터 길이 2.5km, 높이 12m 의 긴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11세기의 로마식 성벽인데, 보존상태가 상당히 잘 되어 있어 1985년 중세 성벽을 포함한 시가지 자체와 내부 성당들이 대거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올려졌다. 

주위를 보면 그저 목장과 밀밭 뿐이라 한적한 시골인데, 유수의 문화유산을 보유한 동네라 하니 괜시리 샘이 난다. 어수룩한 옷차림과 손때 묻은 지팡이를 집은 마을 어르신이 본인 고향에 대한 자부심으로 외지인인 내게 말을 건다. 처음에는 묵묵히 듣다가 이내 우리가 외침만 좀 적었더라면, 아니면 목재 대신 석재로 건물을 올렸더라면 면적은 작지만 엄청난 문화재 보유국에, 며칠 밤을 새도 끝없는 이야기가 흐르는 전통적인 문화 강국이 되었을 거라며 뇌피셜을 피력하려다 혀끝에 알싸하게 남고 만다. 제아무리 고향을 떠나 오래 나와도 역시나 그 속에선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현장이었다.

아빌라 전경
아빌라 전경

아빌라는 단순히 외양의 성벽만으로 유명한 곳은 아니다. 이곳은 노래와 성자의 도시 (Ciudad de Cantos y de Santos) 라는 별칭이 있다. 이베리아 반도의 흔한 시골 풍경인데도 그런 별명이 붙을 정도로 아빌라는 중세 당시 음유시인의 시적 상상을 자극해 중세 기사의 기개와 사랑의 샘이 되는 한편, 쉼없는 전투 속에 불안한 삶으로부터 절대자를 찾아 신의 뜻을 탐색하던 수도자들의 쉼터가 되어준 곳이기도 하다. 

하여 기독교 순례자에게 이곳은 까르멜 수녀회의 대표인물인 성녀 아빌라의 떼레사 (또는 예수의 떼레사)의 고향으로도 알려져 있다. 12살에 어머니를 여윈 떼레사는 성모님에게 자기의 어머니가 되어 달라고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19살 나이에 수녀가 되기로 결심하고 아빌라의 강생 까르멜 수녀원에 들어간다. 이후 내적 수양을 쌓고자 홀로 기도와 독서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신비스런 체험과 환시를 자주 경험한다. 비신자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대표적인 일이 기도하던 중 불로 만든 창을 가진 천사가 나타나 그녀의 가슴을 찔렀는데 그 일로 그의 심장엔 성흔이 생긴 사건이다. 이를 두고 성녀 떼레사의 상징은 주로 불화살에 찔린 심장 또는 찔린 중에 환희의 표정을 짓고 있는 수녀의 모습으로 그려지곤 한다.

까르멜 수도원과 테레사 성녀 동상
까르멜 수도원과 테레사 성녀 동상

이후 떼레사는 수녀원과 수도원의 개혁에 힘을 써 67세에 숨을 거두기 전까지 15개의 수도원과 17개의 수녀원을 창설했다. 떼레사의 심장은 지금까지도 썩지 않고 그대로 대테레사 성당에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오늘도 떼레사 성녀의 동상 앞에서 열심히 사진을 담는 분들. 떼레사를 포함한 수많은 성자들은 무엇을 그리도 빌고 빌어 여기 아빌라까지 온 것일까. 그리고 나는 이제 어디로 발길을 돌려 내 인생의 의미를 되짚는 이 여정을 이어갈까.

저마다 가슴 절절한 사연없는 인생은 없다. 그 삶을 노래로 풀어내던 음유시인의 뜨거운 마음과 절대자의 뜻으로 바라보던 수도자의 차가운 이성으로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가 본다.

Stev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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