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59
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59
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딧세이 종결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5.16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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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안니발 카라치가 1590년경에 에칭으로 그린 수잔나와 장로들. 그녀 옆의 분수는 사랑과 욕망의 상징이며, 웅크린 듯한 모습은 다소 웃음을 자아내나 이런 표정은 후에 비너스의 모습으로 일반화되었다.ⓒ 서규석 박사
지금까지 신화, 서사시, 문학과 회화에 등장하는 여신을 둘러싼 숭배와 존경, 불경죄를 통해서 고대사회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회적인 규율의 다양성을 짚어보았다.
중세기를 배경으로 한 백작부인 고다이버, 목욕하는 수잔나, 성처녀 아그네스와 막달라 마리아, 군주 부인 그리셀다의 이야기, ‘마하바라타’에 등장하는 드라우파디 왕비의 수난, 다윗 왕와 밧세바, 영국 근대문학과 라파엘 전파의 회화 등을 소재로 엿보기의 스토리를 지금까지 거재했다.
엿보기 미학의 오디세이는 투시 카메라와 관음증이 일상을 배회하는 현대의 정보화 사회에서 필자는 폭력으로서의 성과 억압으로서의 성에 반항하는 여신들 그리고 엿보기에 대한 벌로 내려지는 속죄양을 통해서 현대적인 지혜와 경고를 시사한다.
신화와 작품 속의 여신들을 통해서 보면 한 집단이 개인들에게 가한 행동규율, 규범을 어겼을 때의 단죄, 그리고 도덕적인 갈등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엿보기의 미학을 논한 이유는 우리도 신들과 마찬가지로 행동할 수 있고, 그들과 비교할 수도 있다는 전제에서다.
우리가 만약 신들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 세계 또한 질서와 타락의 경계를 넘나들고 싶어 하는 인간의 잠재의식과 긴장감을 확인하고 또 그 위험성까지 인지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추측 때문이다.
엿보기 미학은 여신이 설정한 금지된 영역을 넘어 몰래 엿볼 때부터 덫에 걸리는 남성의 벌을 뜻한다.
신화는 모두에게 ‘금지된 영역’을 설정해 놓고 그 덫에 걸린 자들에게 파멸적인 희생을 가했다.
신화 속에서 이 같은 플롯은 금지영역을 만들어 놓으면서도 인간들이 거기에 탐닉하게 함으로써 대중에 노출되지 않은 기적과도 같은 요소를 부여해준다.
아르테미스의 목욕장면을 엿보게 된 악타이온이나 말을 타고 성내를 도는 고다이버를 본 남성들이 개에 물려죽거나 벼락을 맞아 눈이 머는 벌들은 금단을 넘어선데 대한 비극이다.
이런 극적 요소들은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누드의 한계와 예술이란 옷으로 갈아입었다.
아르테미스와 고다이버, 아그네스, 수잔나는 금기된 연출영역이며, 나신을 노출하더라도 성적으로 확고한 평판을 얻을 수 있는 영역을 갖고 있다. 반면, 이 영역을 넘어선 엿보기는 곧 죄와 연결된다.
남성들이 벗은 미를 보고 즐거워하는 전형적인 스코퍼필리아(scopophilia)라면 여인들은 노출증을 좋아하는 엑서비져니즘(exhibi tionism)과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인간이 살아오면서 신화와 예술 속에 투영하여 공적인 영역으로 남겨두면서도 이를 은밀하게 꺼내보이다가도 사회적 도덕이란 이름으로 단죄할 수 있는 영역이 된다.
신화 속의 미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면서도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추상성을 부여한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이다.
신화와 회화와 고전문학을 통해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신들의 갈등, 도덕에 대한 파괴로 야기되는 갈등 속에서 인간의 질서를 다시 만들어가는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엿보기의 신화와 미술의 오딧세이가 주는 의미가 아닐까?

서규석 박사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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