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차도살인 그리고 어느 도백의 중도하차
[데스크 칼럼] 차도살인 그리고 어느 도백의 중도하차
  • 한내국 정치부장
  • 승인 2009.12.10 1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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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도살인은 손자병법의 36계중 제3계를 일컫는 말이다. 이 작전은 적을 칠때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남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의 피해를 줄이는 명분과 함께 적도 제거하는 일거양득의 효과적인 지략을 일컫는 말이다.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이 말은 나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나의 힘보다는 남(적)의 힘을 빌어 소기의 목적을 이루는데 있다.
문자 그대로 이는 간단 명료한 계책이다. 범죄수사물에서 흔히 등장하는 다른 사람의 총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자신의 지문은 남기지 않음으로써 그 죄를 억울한 총 주인에게 뒤집어 씌우는 일 같은 것이다.
달리 말하면 차도살인은 도구 그 자체를 빌리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기보단 그 행위를 빌리는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한마디 돌려말하면 ‘다른 사람의 손을 빌어 (내가 원하는)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정확하다.
하지만 아무리 병법이라고 하지만 유독 살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이 계책에 대한 부정적 인식 즉 간계(奸計)이기 때문이다.
간계도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계책이지만 썩 정정당당하지 않은 방법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유독 이 계책이 이렇게나 강렬한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이 계책의 핵심은 자신의 힘이 부족하거나 혹은 아껴야 할 필요가 있을때 남을 이용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중국이 즐겨쓰던 소위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전략이 차도살인의 범주에 들어간다 할 수 있겠다.
자신은 명분과 실리를 챙기며 실제로 손에 피묻히는 일은 남이 맡도록 하는 것이다.
세종시가 딱 그렇다. 도백은 명분에서 밀려 직책을 사퇴했으며 그 결과 날뛰는 적 앞에 직접당사자인 충청민은 동력을 상실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갈등의 결과를 굳이 유추까지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말 그대로 분기탱천했던 충남도는 하루아침에 그 기운을 잃어버린 상태가 됐다.
세종시를 둘러싼 정부의 수정의지가 토끼몰이식으로 진행되고 있지만 어느날 도백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퇴를 단행했다. 그의 사퇴로 유일한 명분이었던 권리와 책임이 사라졌고 충청민의 자존심도 함께 사라졌다.
사퇴는 그가 가진 의무는 물론 도민이 위임한 책임까지 모두 포기하는 것이다. 사퇴를 앞둔 시점에 도의회와 자당 소속 당원들은 모두 사퇴만큼은 하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하지만 도백은 도민과의 이전부터 해 온 약속을 이유로 사퇴를 강행했다.
이 시점에서의 도백의 사퇴는 말 그대로 게임 끝이나 다름없다는 회의론이 지배적이다. 원안추진을 더 이상 도백이 앞장서 저항할 수도 없으며 나아가 더이상 전직 도백으로서 도민 앞에 나서 이번 원안투쟁을 지휘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도백이 사라지자 당장 직접당사자인 충청민들의 목소리 대신 정치권과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만 가득 차게됐다.
덕분에 수정을 추진하고 있는 대통령과 정부는 연일 매스컴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그들의 목적을 위해 가속항진하고 있다. 급기야 대통령이 직접 충청민에게 나서 이해와 설득작업을 하겠다고까지 한다.
다음달이면 세종시 수정안이 확정될 것이고 국회로 이동한 이 법은 힘을 앞세운 여당에 의해 간단하게 처리될 것이다. 그런 유추를 가능하게 하는 일들이 이미 일어났고 또 지금도 예산편성에서도 보여지고 있으니 이를 세간에선 날치기라 부른다. 이런 마당에 야당의 힘은 동네 노랫소리에 불과한 현실을 어찌 개탄할 수 있을까.
차치하고 도백은 탈당보다 왜 사퇴를 택했는가 하는 점이다. 충청도의 상황과 정서대로 라면 탈당이 우선이며 사퇴는 정부안 확정된 연후에 해도 늦지 않다. 하지만 도백은 돌연 사퇴를 강행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사퇴할 수 밖에 없을 곡절한 사유가 있었을 것이라는 소문도 회자되고 있다. 정부가 그의 약점을 쥐고 이를 사용하려 했다 등등…
차도살인의 주인공은 삼국지에서 조조가 예형을 제거한 일화다. 삼국지 위지 순욱전(荀彧傳)에는 조조와 첫만남부터 들이 댄 예형은 말 그대로 기행과 독설로 사사건건 조조를 궁지에 몰았다.
결국 조조는 예형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가 되었는데 세상 인심이 두려워 자기 손으로 죽이지는 못하고 유표에게 역할을 맡기지만 유표 역시 성질급한 화조를 통해 예형은 제거된다.
이 악역으로 조조는 남의 손을 빌어 자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 됐다. 그 때문에 조조는 직접 죽이고 겪을 비난을 피하게 된 것이다. 사퇴한 도백은 정치권에서 예형의 대역이 아니었을까라는 말이 지금 충청민들에게 소리없이 퍼지고 있다.
그런 지금 행복도시가 들어 설 충남도에는 행복은 없고 불행한 그림자만 드리워진 채 을씨년스러운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지만 이 땅엔 도백도 또 누구하나 선두에 나서 이를 헤쳐나가려는 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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